돼지저금통 모양 양초 팔던 고교생…'스테디 셀러' 식품건조기 사장으로

입력 2019-03-19 17:25  

사장님의 첫 직업은…

하외구 리큅 대표



[ 전설리 기자 ] 1996년 말 국내 주방가전업체 영업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미국의 한 가전업체를 찾아갔다. 그는 미국 제품을 베껴 만든 한국 제품을 들고 대표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이 제품을 200달러에 만들고 있죠. 제가 80달러에 같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대표는 “당장 나가라. 소송을 걸겠다”고 호통쳤다. 5분 만에 쫓겨난 그를 눈여겨본 미국 업체 부사장이 따라나왔다. 그리고 “나랑 사업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하외구 리큅 대표(사진)는 주방가전 시장에 뛰어들었다. 리큅은 식품건조기 블렌더 등을 수출해 한때 매출이 50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 대표가 처음 사업에 재미를 느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용돈이 필요했던 그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양초를 만들어 팔았다. 파라핀과 크레용을 녹여 돼지저금통 와인잔 등을 틀 삼아 제작했다. 대학 졸업 직후 첫 직업은 패션회사 인턴이었다. 1988년 미국 폴로 등 의류를 수입해 팔던 신한인터내셔널에 입사했다. 첫 6개월간 매장을 청소하고 제품을 정리했다.

2년 만인 1990년 자동차 부품사인 제일엔지니어링으로 옮겼다. 7~8년간 해외영업부에서 근무했다. 제일엔지니어링이 인수한 주방가전업체에서도 일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해외 영업의 경험을 살려 품질 좋은 한국 주방가전을 해외에 내다 팔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1997년 9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창업했다. 그는 제품을 생산하고, 공동 창업자는 미국에 내다 팔았다. 1998년 처음 내놓은 제품은 주서였다. 미국 코스트코, 홈쇼핑 등을 통해 판매했다. 당시 대부분 주서 부품은 플라스틱이었다. 그는 주스가 닿는 부분을 모두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 내구성과 위생성을 높였다. 리큅의 주서는 2001년 미국 음식 월간지 ‘고메이’의 대표 주방가전, 2003년 월스트리트저널의 ‘베스트 밸류’ 제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식품건조기도 개발해 미국 영국 등에서 판매했다. 미국에선 사냥철에 사냥한 고기를 말려서 육포로 보관하거나 과일 등을 건조해 먹는다. 2003년 국내에도 식품건조기를 내놨다. 초기엔 반응이 좋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 갑자기 주문이 쏟아졌다. 학교 앞에서 판매하는 불량식품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며 ‘웰빙 간식’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식품건조기의 인기로 2014년 리큅 매출은 480억원을 넘어섰다. 이후 중국산 제품에 밀려 매출이 점차 줄었지만 리큅 식품건조기는 꾸준히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하 대표는 “리큅 건조기는 중국산 제품에 비해 건조 성능과 부품 안전성 등이 월등히 뛰어나다. 국내 생산만 고집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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