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군 찾고 여론을 내 편으로…협상 땐 '지렛대'를 활용하라

입력 2019-03-21 16:54  

경영학 카페

협상의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어려운 국면 반전시킬 수 있어




세상에 쉬운 협상은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쉬울 수가 없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설 경우 서로가 만족하는 타결이 나오기란 더욱 어렵다. 사업이든 외교든 통상이든 마찬가지다. 대규모 계약처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면 자존심 대결로 비화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어려운 국면을 반전시키려면 협상의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작은 힘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지렛대처럼 말이다.

상대가 자기 논리와 이익에만 갇혀 있으면 답답해진다. 남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을 지지하는 세력과 연합해 대세가 기울었음을 주지시키는 방법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몰아내기 위해 걸프전을 준비한다. 의회의 전쟁 승인이 필요했지만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에 찬성할 의원은 많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협상의 방향을 바꾸어 자신을 지지해줄 우군을 먼저 확보하는 쪽을 택한다. 전통적인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유엔으로부터 무력사용 승인을 받아내면서 의회를 압박했다. 한국을 포함한 34개국이 동참하자 미국 의회도 전쟁을 승인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미세먼지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은 2013년 싱가포르를 참고할 만하다. 인도네시아 팜오일, 펄프 생산기업들이 대규모 경작지를 개간하기 위해 열대림에 불을 질렀다. 거대한 검은 연기는 남풍을 타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태국까지 퍼져 나갔다. 싱가포르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300㎍/㎥까지 치솟았다. 인도네시아 정부에 미세먼지 해결을 촉구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독 외교 협상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싱가포르는 다른 방법을 활용했다. 미세먼지 피해를 똑같이 입고 있는 태국, 말레이시아와 공동으로 인도네시아를 압박했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 발 물러섰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환경 포럼에서 인도네시아 장관은 “과거와 같은 최악의 미세먼지 위기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다른 방법은 언론을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12일 삼성반도체 공장 증설을 위한 평택~안성 송전선 건설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 가장 큰 쟁점은 지역 주민 간의 이해충돌이었다. 공장 증설의 혜택은 평택으로 가지만, 송전탑 건립에 따른 재산권·건강권 피해는 안성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4년이 넘도록 평행선을 달렸던 협상은 결국 산간지역 구간 중 1.5㎞를 지중화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것은 언론이었다. 한국경제신문에 ‘5년째 송전탑에 막힌 30조 반도체 공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자 국민의 시선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가뜩이나 국내 경기가 어려운데 삼성 반도체 공장이 해외로 나간다면 여론의 역풍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익이라는 명분 앞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여론은 어려운 협상을 푸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비슷한 사례는 홍콩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98년 홍콩은 아시아 금융위기, 홍콩의 중국 반환 등으로 관광객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등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 홍콩 정부는 관광산업 부흥과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각종 인프라 투자와 함께 세계 제1의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 유치에 나섰다. 홍콩 정부의 어려운 점을 간파한 디즈니랜드는 토지 구입비용 지원, 세제 혜택, 인프라 건설비 지원 등을 요구했다. 이때 홍콩 정부는 관점을 전환했다.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한 것이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중시하는 디즈니랜드가 과도한 경제적 이익에 매달리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게 한 것이다. 이 보도 후 디즈니랜드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기업 이미지가 중요했던 디즈니는 무리한 조건을 양보했다. 합의 내용을 언론에 공표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감시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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