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인프라 비해 경쟁력 저조
빅데이터 도입 기업도 7.5% 그쳐
[ 배태웅 기자 ] “한국의 빅데이터 활용 경쟁력은 세계 63개국 중 31위에 불과합니다. 국내 기업이 데이터를 쌓아 놓고도 규제 때문에 활용하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이성호 대한상공회의소 신성장연구실장은 21일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열린 제38회 산업경쟁력포럼 기조발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 연구실장은 “국내 전체 연구개발(R&D) 비중의 절반을 정보기술(IT) 분야가 차지하지만 빅데이터 경쟁력은 최하위 수준”이라며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개인정보, 활용에 중점 둬야”
산업경쟁력포럼은 국가미래연구원이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후원한 행사다. 이날 세미나는 ‘한국 산업의 빅데이터 경쟁력’이란 주제로 열렸다. 30여 명의 학계, IT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김용학 타파크로스 대표, 박혜린 옴니시스템 대표, 이원석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김현철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융합정책관이 토론을 벌였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데이터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국내 환경과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연구실장은 한국의 빅데이터 경쟁력이 IT 인프라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도입한 국내 기업(직원 100명 이상)은 2017년 기준 7.5%에 불과했다. 또 국내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시도한 기업은 전체의 약 1.7%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실장은 “미국과 중국은 금융, 의료 분야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할 창구를 열어 산업을 급격히 발전시키고 있다”며 “빅데이터 부문 경쟁력이 뒤처지면 이런 분야의 산업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타파크로스를 이끄는 김용학 대표는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규제 문제와 시민들의 반발로 기업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타파크로스는 2014년 경희대, 녹십자헬스케어, 포스텍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위한 빅데이터 플랫폼 ‘마이닝마인즈’를 구축했다. 김 대표는 “플랫폼과 데이터가 마련돼 있지만 데이터 활용이 어려워 분석 수준을 높이기 힘든 실정”이라며 “업계는 규제 완화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골든타임 놓칠라”
지난해 8월 정부는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규제 혁신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 7개월이 흐른 지금도 ‘빅데이터 경제 3법’인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개인정보 침해 사고가 빈번한 한국에서 빅데이터 경제 3법 개정은 시기상조”라며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이원석 교수는 “정부와 시민단체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면 빅데이터산업을 키울 ‘골든타임’을 놓친다”며 “익명정보를 활용한 신기술로 돌파구를 뚫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정보란 개인정보에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완전히 지운 것을 말한다. 식별정보가 남는 가명정보와 달리 정보 조합을 해도 개인을 특정할 수 없다.
그는 “과거에는 익명정보가 빅데이터 분석에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익명결합’ 기술이 등장해 가명정보와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다”며 “산업계가 먼저 신기술을 도입해 안전함을 증명하면 시민단체의 생각도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철 정책관은 “그동안 산업부 내에서 빅데이터·개인정보 활용 문제를 총괄할 부서가 부실했다”며 “올해는 1300억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체 기술 개발은 물론 빅데이터 활용 우수 사례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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