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巨木(거목)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樂器(악기)를 가진 아이와
손쥐고 가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다.
《김종삼 전집》(나남) 中
겨울에서 봄,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계절은 부지런히도 바뀐다. 겨울에 걸었던 거리는 봄이 오자 사뭇 다른 거리 같다. 이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던 것은 나였을까 계절이었을까? 겨우 꽃봉오리를 맺은 거목들은 꽃잎이 피기 전에 앙다문 입술처럼 조용해서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 같다. 아이가 말을 배우듯 봄은 언제나 새롭고 신비한 풍경이다.
이서하 < 시인 (2016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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