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3세들이 마약 혐의로 잇따라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지도층과 경찰 간의 유착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SK그룹 창업주의 손자가 1일 경찰에 긴급체포됐고, 현대가 3세도 입건된데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인 유명 블로거 황하나 씨의 과거 수사사 의혹에 대해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
SK 고 최종건 회장의 손자인 33살 최 모 씨는 액상 대마를 상습적으로 구매했다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최 씨는 지난해 3월부터 마약 공급책인 29살 이 모 씨를 통해 4그램짜리 고농축 대마 액상이나 과자 형태의 대마를 최소 5차례 구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액상 대마는 일반 대마초 특유의 냄새가 적어 전자담배 등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월에 검거된 마약 공급책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최 씨가 마약 구매 자금을 통장으로 입금해 주면 이를 가상화폐로 바꿔 대마를 산 뒤, 택배로 보냈다고 진술했다.
이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29살 정 모 씨도 마약을 구매한 정황을 포착해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현재 해외에 머물고 있는 정 씨가 귀국하는 대로 조사하는 한편, 이들과 대마를 공유한 부유층 자녀 등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재벌 3세들의 마약 네트워크는 영화 '베테랑'의 상류층 마약 환각 파티와 닮아 있다.
극중 대기업 가문의 골칫덩어리였던 조태오(유아인 분)는 후처소생이라는 컴플렉스 속에서 방향을 잃고 마약과 환락에 탐닉한다.
자신의 범죄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놓이자 싱가폴로 도주하기 전날 밤 상류층 자제들을 불러모아 환각 파티를 벌이며 결속을 다지는 장면에서 경찰의 추격이 턱 밑까지 이르자 "너희들 나 잡히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어떻게 되는줄 알지?"라며 그 엄청난 파장을 경계한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재벌가 3세 황하나 씨도 결국 마약 공급책이 아니었느냐는 구설수에 휘말렸다.
경찰은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씨의 과거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서는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황씨는 지난 2016년 대학생인 조모씨와 함께 마약인 필로폰을 함께 투약하고 매수·매도한 혐의를 받았다. 해당 매체가 입수한 조씨 판결문에는 황씨가 마약 공급책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마약 매수·매도 혐의 관련해 어떤 수사나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조씨는 2015년 중순 경 강남 모처에서 황씨에게 필로폰 0.5g을 받았다. 조씨는 황씨의 지시에 따라 마약 공급책 명의 계좌에 30만 원을 송금했다. 황씨가 필로폰을 희석해 주사하도록 조씨에게 지시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재판부는 "조씨(피고인)가 황하나와 공모해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판단했다.
조씨는 2015년 10월경 입건돼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황씨에 대한 소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봐주기 수사' 논란에 대해 "남양유업 외손녀 황모씨 마약 혐의 수사 관련해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진상을 파악할 것이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경찰은 "2015년 10월에 종로경찰서에서 해당 사건 수사에 착수해 A씨를 마약류관리법위반으로 구속한 이후, 2015년 11월경 황씨를 포함한 7명에 대해 A씨와의 공범 또는 개별 혐의로 입건한 바 있으나 이후 2017년 6월경 나머지 7명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지능범죄수사대(지능1계)에서 내사에 착수한다고 전했다.
'승리 게이트' 경찰 유착의 단서가 된 '경찰총장(경찰청장)'과의 친분은 이번에도 화두로 떠올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황씨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따르면 황씨는 2015년 12월 마약 사건과 관련한 수사가 마무리될 무렵 지인에게 "사고 친 후 어머니와 심하게 다퉜다"라고 토로했다.
황씨는 지인에게 "사고 치니깐 (어머니가 화나서)…그러면서 뒤처리는 다 해준다"며 "(사고 치고 다니니깐 어머니는) 내가 미운 거지 뭐"라고 말했다.
황씨는 2015년 8~9월 한 블로거와 명예훼손 여부를 놓고 소송을 벌였을 무렵 경찰 서장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외삼촌과 아버지가 경찰청장과 베프다(아주 친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버닝썬 게이트' 관련해 승리 정준영 최종훈 등 카톡방 멤버들은 자신들과 친분이 있는 경찰 간부를 '경찰총장'으로 부르며 그와의 연결 고리를 과시했다.
잇단 유착과 비리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경찰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명운'을 걸고 수사에 임하는 상황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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