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 눈의 들보 봐야
허희영 <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 >
전문경영인은 오너보다 경영을 더 잘할까.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에는 경영전문의 프로가 유리하다. 그러면 기업가치도 더 높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너경영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주인과 월급사장 간에 내재된 욕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욕구의 차이는 장기적인 경영성과에서 잘 나타난다. 1970년대 후반 등장한 대리인 이론은 주주와 경영자를 의뢰인과 대리인의 관계로 설명한다. 전문경영인이 기업가치의 증가를 바라는 주주들의 바람대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다. 전문경영인은 장기 투자보다 단기적으로 돈이 되는 투자를 선호한다. 당장의 영업실적으로 주주를 만족시켜야 임기가 연장되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기업지배구조의 양상은 다르다. 전문경영인의 장점이 잘 발휘되는 나라는 미국이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조건이 맞으면 고용계약이 성립된다. 경영자는 몸값을 높여 유리한 연봉을 주는 직장으로 옮겨간다. 주주들은 경영 성과를 배당으로 향유하면 그만이다. 유럽과 동양권에서는 오너경영의 장점이 더 크게 나타난다. 가업승계를 중시하는 기업문화 특성 때문이다. 재벌그룹 회장들이 종종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영에 장점을 발휘하는 배경이다.
최근 오너경영자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경영권을 잃었다. 주주들로부터 64.1%의 찬성을 얻고도 연임에 실패한 것은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조 회장과 그 일가의 ‘갑질’로 기업 가치가 훼손됐다는 것이 국민연금의 판단이었다. 과연 그럴까. 국민연금의 결정에는 몇 가지 짚어볼 점이 있다.
첫째, 조 회장과 그 일가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기업가치는 정말 훼손됐고 주주들은 손해를 입었을까? 대한항공은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발생 이듬해부터 3년간 평균 8%대의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작년에는 유가상승에도 불구하고 7.2%의 매출 증가와 5.3%의 영업이익률로 글로벌 항공사들을 제쳤다. 기업가치는 연평균 5%씩 증가했다. 국민연금의 판단과는 정반대다.
둘째,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임원 연임 표결을 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리인가? 이번 주주권 행사는 국민 동의 없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가 임의로 내린 결정이었다. 위원회에는 정부 추천 인사들까지 포함돼 독립성마저 의심스럽다.
셋째, 국민연금은 자신의 존립문제부터 고민해야 한다. 현재 추계대로라면 국민의 노후자금은 늦어도 2057년에는 고갈된다. 기본소득의 9%를 연금으로 내고 있는 1990년생들이 67세가 되는 시점이다. 해법은 있다. 지금보다 많이 내고 적게 받는 연금정책의 전환이다.
기금운용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국민연금이 주식에 투자한 기업이 위법한 활동으로 심각한 손해를 입으면 임원 인사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나쁜 기업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스스로 부실경영의 책임을 져야 할 국민연금 집사의 엉뚱한 ‘갑질’인 셈이다.
기업의 흥망은 주주와 오너의 문제이지만 국민연금의 흥망은 국가와 국민의 문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대상은 바로 대리인 문제가 심각한 지금의 국민연금공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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