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까지 집계된 사례만 34편, '한한령'으로 더욱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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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가 자신의 2017년 tvN '알쓸신잡' 제작발표회에서 한 발언이다. 나영석 PD가 연출한 tvN '윤식당', '삼시세끼' 등 프로그램이 중국에서 판권 계약 없이 무단으로 표절했다는 의혹이 빚어지자 속내를 담아 표현한 것. 나영석 PD가 중국의 표절 문제에 대해 언급한지 3년째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중국의 무단 표절 피해자는 나영석 PD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수(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사·방송 프로그램 제작사로부터 제출받은 '중국 방송사의 국내 포맷 표절 의혹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KBS 7개, MBC 3개, SBS 10개, JTBC 5개, tvN 6개, Mnet 3개 등 총 34개 프로그램이 중국에 베끼기 피해를 당했다.
여기에 지난 2일에는 중국 텐센트에서 '나와 나의 매니저'라는 프로그램이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현재 다른 중국의 한 제작사와 정식 판권 계약을 맺고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아직 방영 시기와 플랫폼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리 둘의 관계'라는 타이틀로 방송될 예정이다.
수년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한국 프로그램 판권을 수입하는 큰 손으로 불렸다. MBC '아빠 어디가', KBS 2TV '1박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한국에서 인기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대부분은 중국과 판권 계약을 하고 중국판이 방영됐다. 특히 SBS '런닝맨'이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 해 SBS 매출을 견인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2016년 7월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배치에 항의하며 '한한령(限韓令)'을 선포하면서 공식적인 양국 대중문화 교류는 끊긴 상태다. 한국 연예인 출연은 물론 한국 프로그램을 직접 방영하고, 포맷을 수입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전면 금지됐다. 그렇지만 한국 콘텐츠에 대한 인기까지 단숨에 사라질 순 없었다. 결국 중국이 택한 방식은 '표절'이었다.
실제로 한한령이 발현된 2년 동안 적발된 포맷 표절 건수는 15편에 달했다. SBS '미운 우리 새끼', '정글의 법칙', Mnet '프로듀스101', JTBC '효리네 민박', '냉장고를 부탁해' 등 인기 예능프로그램들이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한 채 중국에서 복제식으로 양산되고 있다.
특히 '프로듀스101' 표절작으로 꼽히는 중국 아이치이의 '우상연습생'은 지난 4월 국제포맷인증및보호협회인 FRAPA(Format Recognition and Protection Association)에서는 "유사도가 88%에 이른다"며 사실상 표절 판정을 받았다. 이는 FRAPA에서 제기된 '포맷 저작권 침해' 사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우상연습생' 외에 동방위성TV의 '짜요미소녀', 큐큐닷컴티비의'최강여단' 등 다른 표절프로그램들도 존재한다.
중국의 표절 프로그램들은 콘셉트뿐 아니라 출연진의 구성, 전개방식까지 흡사하다는 반응이다. 더욱이 해당 프로그램에 유명 연예인들까지 가세해 높은 시청률을 이끌고 있다. '윤식당' 표절 프로그램인 '중찬정'의 경우에도 황효명, 조미, 주동우, 장량 등 중국 내 톱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중국의 도를 넘은 베끼기에 중국 내에서도 "부끄럽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한한령 이후로 민간 차원에서는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방송가 관계자들의 말이다.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표절사례는 빠르게 적발되고 있지만, 이를 적극 대응할 수 없어 눈 뜨고 당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FRAPA 측의 표절 판결에도 '우상연습생' 측은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적 재산권에 관한 '가장 높은 기준'을 고수했으며 '우상 연습생'은 중국 시청자들에 대한 (방송국의) 이해와 창조성으로 결합시킨 것"이라며 "만약 문제가 있다면, 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표절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현재 국내 방송 산업 규제와 보호는 방송통신위원회, 콘텐츠 진흥과 저작권 보호는 문화체육관광부로 분산돼 있어 효과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연출자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대응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한다"며 "방송사, 제작사 입장에서 대응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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