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미얀마의 아웅산수지 여사는 54년간의 군부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미얀마 국민들은 보다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새로운 미얀마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국제사회도 아웅산수지 여사가 20여 년의 가택연금 등 오랜 고난의 세월 속에 꿈꿨던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실현해 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아웅산수지 여사의 민주주의민족연맹(NLD) 정부는 출발부터 수많은 도전에 맞닥뜨렸다. 총선에서 80%의 표를 얻는 압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아웅산수지 여사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헌법상 가족이 외국 국적인 경우 대통령이 될 수 없는데, 별세한 남편과 자녀들이 영국 국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웅산수지 여사는 외교장관과 대통령실 장관을 겸직하면서 총리에 해당하는 국가고문직을 맡게 됐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군부와의 관계도 커다란 도전이었다. 군은 상·하원 각각 전체 의석의 25%를 지명하고 국방장관, 내무장관 및 국경장관을 임명할 권한을 갖고 있어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
로힝야족 문제에 발목 잡혀
보다 시급한 당면과제는 자치 또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소수종족들과 화합을 이루는 것이었다. 미얀마는 68%를 차지하는 버마족 이외에 134개의 소수종족으로 이뤄진 다종족 복합사회다. 미얀마가 국민적인 통합을 이루지 못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배방식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에도 연유한다. 영국은 버마족과 비(非)버마족을 철저하게 분리 통치하면서 서로 견제하게 했다.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이 영국에 대한 독립운동을 전개할 즈음, 영국은 이미 소수종족들에 독립 또는 자치권을 약속한 상태였다. 따라서 독립 버마의 탄생은 이들에게 달갑지 않은 것이었고, 이후 내전과 갈등이 계속돼왔다.
결정적으로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로힝야(Rohingya)족 문제였다. 2017년 8월 미얀마 서부 여카잉주의 무슬림인 로힝야족 반군이 미얀마 군·경 초소를 공격한 것을 기화로 군부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전개됐고, 70만 명이나 되는 로힝야족이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이번 사태는 인종청소 의혹까지 불러일으킴으로써, 문제 해결에 책임있는 역할을 못 하는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에 대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됐다. 급기야 국제앰네스티는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수여했던 양심대사상(Ambassador of Conscience Award)을 박탈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얀마 정부의 경제 개혁·개방 정책은 힘을 잃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감소하는 등 경제 부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로힝야족 문제는 오늘날 미얀마가 안고 있는 뿌리 깊은 역사·종족·종교적 문제의 압축본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로힝야족은 134개의 여타 종족과 달리 미얀마의 소수종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으며 그에 따라 많은 차별을 겪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로힝야’로 부르지 않고 여카잉 무슬림 또는 벵갈인이라 칭한다. 로힝야족은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미얀마에 이주한 토착민이라고 주장하지만, 미얀마 정부 그리고 로힝야족을 제외한 미얀마 국민들은 이들을 영국 식민지 시기에 불법 이주한 사람들로 간주한다. 로힝야족은 다른 소수종족과 달리 미얀마 사회에 동화되길 거부함으로써 배척 대상이 되는 것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또 2000년대 미얀마에 불교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반(反)무슬림 정서가 확산되면서 로힝야족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또는 미얀마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집단이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군부는 로힝야족 문제를 군의 역할과 위상을 확보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
신남방정책의 주요 파트너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서도 로힝야족 문제에 대한 입장 정리는 쉽지 않다. 아세안은 ‘내정 불간섭’ 원칙에 따라 아세안의 단합을 해칠 수 있는 문제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인권 차원에서 탈출 난민들의 안전한 송환과 재정착을 위해 아세안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얀마는 한반도 3배 크기의 넓은 국토, 풍부한 천연자원, 젊은 인구, 중국·인도와 아세안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발전 잠재력이 큰 나라다. 향후 ‘포스트 베트남’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신남방정책의 주요 파트너다. 미얀마 지속가능개발계획(MSDP)을 통해 ‘평화롭고 번영하며 민주적인 미얀마’를 실현하고자 하는 미얀마는 한국의 발전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최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에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로힝야족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미얀마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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