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기업 등 계열사 지분 팔면
750억원가량만 확보 가능
[ 조진형/김보형/고윤상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경영권 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진칼 2대주주인 ‘강성부 펀드(KCGI)’가 보유 지분을 계속 늘리면서 경영권을 압박하던 상황에서 2000억원 안팎에 이르는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변수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궁금증은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오너 일가가 한진칼 지분 매각 없이 상속세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시장에선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현실적으로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지켜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백기사(우호세력)’ 영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미 물밑에서 국내외 사모펀드(PEF) 등과 활발한 접촉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분을 조금씩 늘려온 KCGI가 어떻게 대응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2000억원 상속세 마련 여부가 관건
9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CGI는 당장 지분 추가 확보보다는 경영권 승계 구도와 상속세 납부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응 전략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KCGI는 2월 말부터 특수관계인 엠마홀딩스를 앞세워 지난주까지 한진칼 보유지분을 10.81%에서 13.47%까지 늘렸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과거 조 회장이 부친인 조중훈 회장 타계 후 형제들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는 점에서 KCGI 측으로선 이번에 3세들 간 상속 과정을 면밀히 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상속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에 따라 대응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선 조 회장의 별세로 장남인 조 사장에게 그룹 경영권 승계가 속도감 있게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사장은 한진그룹 오너 일원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조 사장(2.34%)과 조현아 전 부사장(2.31%), 조현민 전 전무(2.30%) 등의 한진칼 지분율이 엇비슷해 조 회장의 지분(17.84%)을 장남에게 몰아줘야 경영권 확보가 가능하다.
“실적개선 없는 배당확대 어려워”
조 사장 등 오너 일가에게 2000억원 안팎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할 여력은 많지 않다.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려면 우선 한진칼을 제외한 상속 지분을 처분하는 방법이 있다.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매각하면 경영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오너 일가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진칼 지분을 제외한 한진, 정석기업, 토파스여행정보, 그리고 대한항공 지분 매각을 통해 약 750억원의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양 애널리스트는 “나머지는 한진 등이 부동산 등 보유 자산매각을 통한 배당금 확대, 상속지분의 담보대출 등을 통해 충당하고 5년간 상속세 분할납부를 이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조 회장 일가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한진칼 지분을 포기할 가능성은 작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진칼 지분 매각 없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건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보유자산 매각은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만큼 주주 동의 없이 실행하기 쉽지 않다. 자회사 실적 개선 없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확대하는 것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증권가 일각에선 조 회장의 부채가 연대보증에 묶여 있는 점도 상속 과정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광장 TF팀 발족 “백기사 접촉”
전문가들은 오너 일가가 백기사 영입에 본격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말 KCGI의 지분 매입 직후 적지 않은 펀드나 증권회사 등과 접촉했다. 하지만 우호세력을 영입하는 데 실패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한진그룹 편에 섰다가 자칫 문재인 정부에 찍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모두가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며 “하지만 조 회장이 별세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광장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대응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광장의 설립자인 이태희 변호사는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사위다.
KCGI와 같이 행동주의펀드를 표방한 펀드가 백기사로 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KCGI와 차별화된 기업가치 개선 방안을 마련하면서 시장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진 측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몇몇 기업이 한진칼 지분을 일부 넘겨받고 백기사를 자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진칼 주가는 전날 20.63% 오른 데 이어 이날 개장과 함께 13%대 급등했다가 기관투자가와 외국인 매도가 쏟아지면서 0.82% 내린 3만1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진칼 우선주는 배당 확대 기대감에 상한가로 마감했다.
조진형/김보형/고윤상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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