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병원 찾는 경증환자에게
부담 높이겠다지만 효과 '글쎄'
[ 이지현 기자 ]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국내 ‘빅5 병원’을 찾는 환자가 부쩍 늘고 있다.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는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대형병원의 진료비 부담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환자가 늘면서 이들 병원에서는 암 환자 등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위해 한 달 넘게 대기하는 일이 흔해졌다.
1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빅5 병원의 외래환자 진료 건수는 지난해 1분기 320만 건으로, 전년 동기(308만3000건)보다 3.8% 늘었다. 같은 기간 빅5 병원을 제외한 전체 대형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진료 건수는 1.3% 증가하는 데 그쳐 빅5 병원 진료 건수 증가폭이 훨씬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대형 대학병원의 진료 증가 건수(20만5000건) 가운데 빅5 병원의 증가 건수가 11만7000건으로 절반을 넘었다. 문재인 케어 시행 전인 2013~2017년 빅5 병원의 평균 외래 진료 증가율은 2.6%였다.
의료계에서는 문재인 케어가 빅5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가속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권 대학병원 환자 쏠림은 2000년대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심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암, 심·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특진비를 없애 대학병원 문턱을 낮추면서다. 게다가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서 대형병원 2·3인실이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되고 각종 비급여 부담이 줄어 경증 환자조차 큰 병원을 찾는다.
환자가 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달 초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A씨는 암 진단 후 MRI 검사를 받기까지 50일 정도를 기다렸다. 수술을 위해 검사받아야 하지만 환자가 몰리면서 검사량이 폭증해 날짜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암이나 중증질환뿐 아니라 통증만 호소하는 환자도 MRI 검사를 받을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검사 대기가 크게 늘었다”며 “검사 지연으로 인한 환자 민원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서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은 경영난으로 아우성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발표한 건강보험종합계획을 통해 대학병원에 가려고 동네의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끊는 환자의 비용 부담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는 대표적인 1등 산업으로, 이미 대학병원 문턱이 낮아져 있어 환자들에게 의뢰서 발급비용을 내게 한다고 해서 동네병원 등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며 “동네의원과 중소병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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