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로 굴복' 오판하는
적대세력에게 타격 줘야"
[ 이미아 기자 ]
북한이 연일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력갱생이란 말을 25차례 언급했다. 1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도 이 같은 기조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시간은 북한 편’임을 대외에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해 장기전을 시사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려는 차원이란 지적이다.
김정은의 최근 발언은 강온 양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김정은은 10일 당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조건과 실정에 맞고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해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세력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표면적인 어조는 강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과 핵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기본적으로 미국을 겨냥했지만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수위를 조절했다”고 분석했다. 앞서 열린 정치국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은 대미 비난과 핵 관련 언급을 자제했다. 지난달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평양 기자회견에서 “우리 최고지도부가 곧 결심을 명백히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발언들을 감안하면 ‘김정은의 결심’이 미국과의 대화 거부는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미국과의 핵협상과 관련해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도 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김정은이 올해 상반기엔 미·북과 남북한 사이의 현 교착상태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단계적 합의, 단계적 이행방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기다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4일 김정은이 삼지연 건설 현장과 6일 원산갈마해양관광지구 건설 현장 현지 지도 과정에서 ‘속도 조절’을 지시한 점을 지목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이 하노이 회담 과정에서 경제제재 해제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역으로 대북제재의 효과가 먹히고 있음을 입증하는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장기전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날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북한 헌법 서문에 있는 ‘핵 보유국’이란 표현이 삭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전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내년 재선 캠페인을 지켜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전문가들이 4월에 북한의 열병식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 데 대해 이날 국방당국은 현재까지 그와 관련한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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