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시작
사회적 논의 없인 혼란만 조장"
일부선 '낙태 수술 거부권' 요구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 이지현 기자 ]
“헌법재판소 결정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낙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 없이 초기 태아 낙태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면 더 큰 혼란만 부추길 위험이 큽니다.”
국내 대학병원의 한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낙태죄가 폐지되고 낙태 수술이 돈벌이가 되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 수술이 급증할 위험이 크다”며 “낙태 수술로 인한 금전적 이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2021년부터 국내에서 낙태죄는 폐지된다. 헌재는 임신 22주까지는 여성 판단과 요청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해 초기 태아에 한해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의료계에서 환호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온 것은 초창기 국내 산부인과 의사들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가 낙태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정부의 산아 제한 정책, 남아 선호 사상 등이 맞물려 산부인과 병원은 낙태 수술로 큰돈을 벌었다. 당시에도 낙태 수술은 불법이었지만 수술이 암묵적으로 이뤄졌다. “일부 산부인과 병원이 낙태 수술로 돈을 벌어 건물을 샀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을 정도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남아 선호 사상은 거의 사라졌고 정부도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피임법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하지만 그사이 과학기술이 발달해 임신 중 태아의 상태를 판별하는 다양한 유전자 검사법이 나왔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각종 유전자 검사와 낙태 수술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병원이 나왔을 때 어떤 대응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유전적으로 다소 이상 있는 아이가 태어나도 키울 수 있는 사회안전망부터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수술 전 낙태에 대해 충분히 상담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서만 수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부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 수술 거부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국내 의료법에 따라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 문제를 터부시하는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2000년대 초반 10대 출산 문제로 고심하던 미국은 사전피임약을 배부하고 조기 성교육을 하면서 10대 출산을 줄였다”며 “일찍 성 교육을 하면 10대 출산이 늘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bluesk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