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제도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지만, 알맹이는 없고 시늉만 냈다는 인상을 준다. 기업들의 주된 요구사항인 공제 대상과 공제 한도는 그대로 두고, 사후관리 기간만 줄여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 중 세액을 50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는 기업은 드물다. 2017년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은 기업이 75곳에 그친 이유다.
가업승계 후 업종과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요건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 100%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최근 스마트공장 도입 등으로 직원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경영환경이 급변하는데 7년씩 업종을 바꾸지 말라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미래 계획은 세우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 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50%)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최대주주 주식할증 30%를 적용하면 65%까지 올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기업의 숨통을 트이게 할 가업상속공제제도마저 회사 경영을 심각하게 옥죄는 조건투성이라면 어떤 기업인이 가업승계에 나서겠는가. 국내 강소 수출기업인들의 모임인 한빛회에서 누군가 “회사를 팔았다”고 하면 “부럽다”며 박수를 쳐준다는 이야기는 중소·중견기업의 서글픈 현실을 잘 보여준다.
가업승계를 ‘부(富)의 대물림’으로만 보는 풍토에선 100년 기업을 키워내는 게 불가능하다. 일자리 유지, 전문 기술 전수라는 긍정적 측면을 똑바로 봐야 한다. 국회에는 기업 의견이 반영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과세체계개선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이원욱 의원도 매출액 기준을 1조원으로 높이는 법안을 제출했다. 정부는 기업 현실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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