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불확실한데
추진위 운영비만 年 400억"
추진위 "법적 권한·효력없는
설문조사" 반발
[ 양길성 기자 ]
서울 강남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일부 주민이 재건축 사업을 잠정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층수·디자인 규제, 인허가 중단, 일몰제 적용 등 재건축 사업에 전방위 규제가 쏟아지면서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섣불리 추진했다간 비용만 증가한다”며 “사업을 중단하는 곳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일몰제로 정비구역 해제 우려”
1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소유주들에게 압구정3구역 재건축 추진위원회의 운영 중단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재건축 사업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설계·정비 업체와의 계약 등 재건축 추진에 막대한 예산을 쏟는 건 위험하다”며 “지구단위계획 확정 때까지 재건축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건축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서울시의 일몰제 적용이 한몫했다. 서울시는 내년 3월 일몰제 적용을 받는 정비사업지 38곳을 정비구역에서 해제할 가능성이 높다. 대상 사업지에 압구정3구역이 포함됐다. 일몰제는 일정 기간 사업 진척이 없는 사업지를 정비구역에서 해제하는 제도다. 정비구역 지정 후 2년 이내 추진위를 구성하지 못하거나 추진위 승인 이후 2년 이내 조합설립 인가 신청이 이뤄지지 않을 시 적용한다. 압구정3구역은 지난해 9월 추진위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지구단위계획 확정 고시가 이뤄지지 않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올해 추진위가 운용하는 예산만 400억원에 달한다”며 “일몰제 적용으로 내년 3월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수 있는 만큼 막대한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서울시가 정비사업 추진 이전부터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중단 이유로 꼽힌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도시·건축 혁신방안’을 내놓으며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과정을 계획 수립 이전 단계에서 한 번 더 거치는 ‘사전 심의’ 절차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 밑그림 단계부터 서울시의 공공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서울시가 추구하는 도시계획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층수 디자인 등을 사실상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압구정3구역 측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정비사업계획에 소유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가 어렵다”며 “커뮤니티시설을 외부인도 같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울시 계획도 주민들이 수용하기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달 초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와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서울시는 부동산 가격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장 강남 재건축 인가는 어렵다”고 말했다.
재건축 중단 속출
모든 주민이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재건축 사업 중단 움직임에 추진위가 즉각 반발했다. 압구정3구역 추진위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는 재건축 사업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는 만큼 설문조사도 법적 효력이 없다”며 “입주자대표회의를 추진위 업무 방해 혐의로 고소하기 위한 법률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재건축 추진 중단에 관한 주민 의견은 엇갈린다. 압구정3구역은 추진위 구성 당시에도 주민 동의율이 53%에 그쳤다. 인근 J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재건축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한 만큼 주민 사이에서도 재건축 사업을 당분간 중단하자는 기류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강남구 ‘대치쌍용2차 재건축’ 조합도 재건축을 잠정 중단했다. 가구당 수억원대의 재건축 부담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지난달 사업을 중단했다. 옆 단지인 대치쌍용1차 재건축조합도 재초환 부담에 임원진이 교체되고 사업 추진이 중단됐다. 지난달 23일 열린 ‘대치쌍용1차 조합 2기 임원 선출 총회’에서 기존 조합장 및 임원진이 전면 교체됐다. 새롭게 구성된 조합은 재건축뿐만 아니라 1 대 1 재건축, 리모델링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서울시와 정부의 의지가 강해 당분간 재건축·재개발이 어려워졌다”며 “사업이 지연되면 큰 비용이 발생하는 까닭에 사업을 잠정 중단하는 초기 사업장이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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