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 예방·관리시스템 '구멍'
[ 이인혁/김순신 기자 ] 한국이 또다시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가 저지른 범죄에 떨고 있다.
지난 17일 경남 진주에선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살인 방화 사건으로 20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같이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흉악범죄는 1년에 1000건 가까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어선 안 되지만, 이들 중 일부가 극단적인 강력사건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관련법에 맹점이 있고 관리 인력 등이 부족해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현병 환자는 매년 증가해 지난해 10만9025명에 달했다.
정신질환 흉악사범 연 1000명
대검찰청에 따르면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 흉악범죄를 일으킨 정신질환자는 2014년 731명이던 것이 2017년에는 937명으로 3년 새 28.2% 증가했다. 성폭력범은 499명에서 677명으로 늘어 가장 큰 증가폭(35.7%)을 기록했으며, 살인범도 같은 기간 64명에서 72명으로 늘어났다. 2017년 기준 전체 살인 및 방화 범죄자 열 명 중 한 명은 정신질환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 2016년 서울 강남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도 한 조현병 환자가 경북 영양군에서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망케 했으며,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도중 환자로부터 살해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범죄 예방을 위해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정신질환자 범죄의 특성은 무차별적이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이들은 또한 일반인에 비해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등 취약점도 있어 전문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전 조치, 사후 대책 모두 구멍
문제는 범죄 위험성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를 미리 발견하더라도 사전조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강제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원래 의사 한 명의 진단으로도 강제입원이 가능했으나, 서로 다른 소속 의사 두 명의 교차진단이 필요해졌다. 이에 더해 ‘자신 및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자타해위험)이 있는 경우’란 단서 조항도 생겼다.
한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의사 두 명이 모두 자타해위험을 증명하더라도 경찰이 해당 환자를 강제입원시키는 데 소극적”이라고 전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으로부터 ‘인권탄압’이란 지적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라는 설명이다.
정신질환 범법자들의 재발 방지 대책에도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정신감정을 통해 정신질환을 이유로 범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면 교도소가 아니라 치료감호시설에 수용된다. 국내에 이 같은 시설은 공주치료감호소 단 한 곳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몇 년째 과밀수용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시설 포화 등 문제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상태에서 내보낼 때도 있다”고 전했다.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대개 보호관찰을 받는다.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통해 준수사항을 지키고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을 이행하게 해 범죄성을 개선한다는 취지지만 관련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수 인력이 정신질환 범법자뿐만 아니라 소년범, 성범죄자 등 거의 모든 범죄자를 관리한다. 지난해 기준 보호관찰관 1인이 연간 190여 개 사건을 처리했다.
한영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인이 연간 20~40건을 처리하는 게 적정 수준”이라면서 “실효성을 위해선 관련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인혁/김순신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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