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한국이 보이지 않는 글로벌 기술전쟁

입력 2019-04-18 17:47  

미국 인재·혁신기업 포식자 된 중국
베트남·우즈베크도 신기술 서비스 질주
트렌드 이끌던 한국의 열정은 어디에

이경전 < 경희대 교수·경영학 >



페이션스라이크미(PatientsLikeMe)라는 미국 기업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유튜브와 함께 참여·공유·개방을 표방하는 웹2.0의 대표적 기업이다. 유튜브가 사용자 자신이 만든 동영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인 것과 마찬가지로, 페이션스라이크미는 사용자들이 자신과 유사한 질환이 있는 다른 사용자와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이 기업에 2017년 중국 아이카본엑스(iCarbonX)가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대주주가 됐다.

아이카본엑스는 베이징 게놈분석연구소 BGI를 성공시킨 최고경영자(CEO) 준왕이 2015년 설립했다. 유전자만으로는 생명현상을 다 해독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한 준왕이 게놈뿐 아니라 단백질 혈액 등 대사체, 신체적 특징과 행동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자 설립한 것이다. 준왕은 이런 목적에 충실하게 수십만 명의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 회사를 사실상 인수한 것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최근에야 알고는 무척 당황했다. 게놈 분석에 한계를 느낀 중국인 기업가가 그 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미국의 대표 회사를 인수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이 기존 방식과 달리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2005년 중국 기업 레노버가 IBM PC사업부를 인수한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양산업을 인수하는 것과 성장산업을 인수하는 것은 그 성격이 다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가만 있지 않았다. 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페이션스라이크미에 중국 기업 대신 새로운 투자자를 찾을 것을 촉구했다는 보도가 지난 4일 나왔다. 페이션스라이크미가 수집한 미국인들의 정보가 중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두고볼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미국 기업 그라인더, 머니그램도 비슷한 사례다.

중국도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어떻게든 미국의 고급 인력을 활용하는 모양새다. 지난 2월에는 중국 정부가 인도인, 위구르인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미국 유전자 분야 권위자인 케네스 키드 예일대 교수와 의료기기 기업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이 연루됐다는 사실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됐다. 미국 민간인과 기업인이 중국 정부와 기업에 협조하는 것을 미국 정부와 언론이 견제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 분야도 비슷하다. 《기계학습》이란 저서로도 유명한 AI 분야 권위자 톰 미첼 카네기멜런대 교수는 중국 온라인 교육기업 이쉐교육의 AI 기반 교육 스타트업인 스쿼럴AI에서 최고AI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이 적응적 학습 기업을 ‘중국의 케이뉴튼(KNewton)’으로 부른다고 한다. 케이뉴튼은 미국의 대표적인 적응적 학습 기업이다. 중국은 미국의 AI 기업을 벤치마킹해 스타트업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미국의 최고 인재들을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스카우트해 경제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런 상황을 눈치조차 못 채고 있다. 중국의 아이카본엑스나 스쿼럴AI 같은 기업은 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벤치마킹하면서 세계 최초, 최고의 기업으로 커가고 있다. 미국 최고 과학자들이 이들 기업에 협조했거나 협조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이런 세계적 동향을 주시하고 미래를 준비할 시기에 이념에 편향된 내적 싸움에 마음과 열정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도 있는 차량공유서비스 우버, 그랩 등이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세계 최초의 헬기 탑승 공유 서비스가 나왔고, 미국 기업 페이스북은 최신 서비스를 베트남 사용자를 대상으로 선보인다고 할 정도가 됐다. 한국은 세계 첨단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의 테스트베드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그동안 세계와 발맞춰 뛰고 달렸던 한국, 세계의 기업들이 앞다퉈 방문해 벤치마킹하고 테스트베드로 삼았던 그 한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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