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미 암호화폐 해킹으로 외화벌이 나서
경제제재를 받는 국가들이 가상화폐(암호화폐)에 주목하고 있다. 통제가 어려운 암호화폐 특성을 이용해 국제사회 제재를 무력화해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북한에선 최근 평양 블록체인·암호화폐 컨퍼런스가 개최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소재 친북단체 조선친선협회(KFA)가 주최했다. 한국·일본·이스라엘 국적자와 언론인을 제외한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참가비는 3300유로(약 420만원)다. 컨퍼런스 발표자 명단은 비공개했다. 평양과 개성 관광도 포함해 외화벌이 목적으로 평가됐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1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KFA는 "가까운 시일 안에 더 큰 규모로 두 번째 컨퍼런스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전문매체 NK경제에 따르면 이번에 열린 컨퍼런스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가족이 참석했다. 단순 외화벌이 목적이라기보단 북한이 실제로 암호화폐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
암호화폐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글로벌 유통이 가능하다. 모네로·대시·지캐시 등 '다크코인'은 거래내역도 숨길 수 있어 사실상 추적이 힘들다. 때문에 마약 거래에 활용되기도 한다. 북한 입장에선 이러한 종류의 다크코인이 국제사회 제재를 피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베네수엘라다. 중남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으며 원유 수출길이 막혔다. 그 결과 1998년 300만배럴을 웃돌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2018년 151만배럴로 반토막 났다. 석유에 의존하던 국가재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재정지출과 부채를 감당 못해 화폐를 찍어낸 결과 지난해 기준 169만8488%라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게 됐다.
베네수엘라가 미국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암호화폐 페트로다. 원유와 가치가 연동되는 이 암호화폐는 대시와 같은 알고리즘을 적용해 추적도 어렵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수출 대금을 페트로로 받으며 금융 감시망을 피했다.
이에 지난달 미국이 페트로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페트로 거래량과 가격은 오히려 반등했다. 암호화폐를 활용한 미국 금융제재 회피 목적을 일부 달성한 셈이다. 북한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외화벌이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하고 있다. 라자루스, 히든코브라 등 해킹조직을 통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탈취해 이를 해외에 내다판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미국 뉴욕금융감독청은 글로벌 거래소 비트렉스의 뉴욕 내 영업을 종료시키는 명령을 내리며 "북한·이란 등 경제제재 대상 국가 국적자의 계좌에서 대량거래가 발견됐다"고 언급했다.
단 북한이 암호화폐를 사용하더라도 긍정적 사례가 되긴 어려워보인다. 추적과 통제가 어려운 암호화폐가 국제사회 공조를 무력화하고 핵무기 개발자금으로 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암호화폐는 대부분 정부로부터 규제를 받지 않으며 추적 회피와 세탁이 용이하다. 북한에게 국제제재를 회피할 더 많은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왕립국방안전보장연구소도 "암호화폐는 북한이 제재를 피해 세계와 거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암호화폐를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자금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 가정"이라고 분석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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