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검찰총장, 이번엔 공수처 '패스트 트랙' 놓고 미묘한 대립각

입력 2019-04-23 17:39  



(안대규 지식사회부 기자) 여야 4당이 ‘패스트 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립 법안을 처리하자고 합의하자 법무부와 검찰이 미묘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합의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판사와 검사 그리고 고위 경찰을 수사하고 기소까지 가능한 조직으로 탄생할 전망입니다.

정치권의 공수처 방안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3일 적극 환경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만 법무부의 외청인 검찰은 이렇다할 논평을 내지 않았습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법무부는 그동안 청와대 주도로 진행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여러 차례 문무일 검찰총장을 외면하면서 ‘검찰총장 패싱’ 논란을 불러왔죠.

법무부는 23일 패스트 트랙 합의를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법무부는 “정부가 역점 과제로 추진해온 공수처법안 및 수사권조정법안 등이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진행될 국회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지원해 바람직한 검찰개혁이 완수될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비슷한 시각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은 패스트 트랙에 대한 4당 추인에 대해 대환영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같은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박 장관과 조국 수석이 ‘콤비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연동률 50%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뼈대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제한적 기소권’을 부여한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에 대해 최단 180일, 최장 330일 이내에 국회 본회의에 부의하게 됩니다.

신설되는 공수처에는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재정신청권을 줄 예정입니다. 수사하는 사건에서 판사·검사·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경우에는 기소권까지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각 부처 장·차관이나 군 장성,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국회의원 등의 범죄에 대해선 기소권이 없어 ‘앙꼬없는 찐빵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복수사에 따른 인권침해 우려 등도 여전하지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법무부가 청와대와 보조를 맞춰가는 반면, 대검찰청과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지는 분위기입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사석에선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이 공정하지 않게 진행될 경우 ‘직을 던지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밝힌 적이 있습니다. 문 총장이 요구하는 수사권 조정은 ‘실효성있는 자치경찰제’와 동시에 추진되는 검찰 개혁입니다. 자칫 경찰이 비대해질 경우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라고 합니다.

문 총장은 지인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할 때에도 “민주주의를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검찰 개혁을 민주주의 구현과 묶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대 검찰총장 중 검찰 제도에 대해 가장 강한 개혁의지를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습니다.

하지만 문 총장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자치경찰제, 다시 말해서 경찰서가 아니라 지구대와 파출소만 자치경찰(지방자치단체장의 지휘를 받는 조직)로 넘기도록 하는 방안은 ‘실효성 있는 자치경찰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보를 담당하는 경찰을 분리해 별도의 조직을 세우는 방안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검찰의 힘은 빠지는 만큼 경찰의 힘이 빠지는 게 아니다는 얘기입니다.

박 장관은 작년 11월에 이어 올해 초 문 총장의 의견을 묻지않고 국회나 행정안전부 등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협의했습니다. 문 총장은 당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자칫 ‘검찰내 집단이기주의’로 비춰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문 총장이 겉으로는 내부 불만을 잠재우는 모습을 취했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내 한 인사는 “진정한 검찰 개혁은 공수처 설치 등 ‘옥상옥’대책이 아니라 청와대가 장악한 검찰 인사권을 검찰총장에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때보다 일선 검사가 느끼는 압박감은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꼭 쥐고 있으니 청와대를 바라보는 ‘정치 검찰’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요즘은 불만이 있어도 검찰 내부게시판에 글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봐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얘기죠. 검찰 내부에선 다음달 가시화되는 차기 총장 선출 절차에서도 검경수사권에 가장 협조적인 후보를 청와대가 낙점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끝) /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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