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업 경쟁력 망치는 '多多益善 신드롬'

입력 2019-04-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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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에 빠지다

지용구 지음 / 미래의창
260쪽 / 1만5000원



[ 최종석 기자 ] 한국의 노동시간은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2개국 중 두 번째로 길다. 연간 노동시간이 2069시간으로 1위 멕시코의 2255시간에 이어 2위다. 반면 2017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4.4달러로 17위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고 1위 아일랜드의 38%에 불과하다. 낮은 노동 효율을 장시간 노동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왔던 것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왜 이렇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까. 《복잡성에 빠지다》를 쓴 지용구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이 질문의 답을 ‘복잡성’에서 찾는다. 기업이 고객 해결 과제를 위한 직무보다 부가적인 일에 지나치게 중독돼 복잡성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복잡성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 또 기업의 이익률을 낮추고 조직 내부의 동기를 저해하며 외부 환경 변화에 둔감하게 한다. 20세기 경영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문어발식 사업 다각화를 통해 성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복잡성에 갇혀 수익구조와 성장전략에 대한 관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11월 이후 다우지수가 40% 오르는 동안 GE의 주가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동원하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신드롬’에 빠질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까지 세계 최대 가전업체 중 하나였던 필립스는 한때 5만 종이 넘는 제품을 시장에 공급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제품 수 늘리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매출은 오히려 40% 감소하고 창사 이래 최대 영업 손실을 냈다. 제품과 서비스 다양화가 관리 프로세스의 복잡성을 키워 엄청난 비용 증가를 초래했다. 이에 필립스 경영진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 전자, 반도체, 조명 등 옛 주력 상품을 버리고 헬스케어와 생활용품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필립스의 영업이익은 증가하고 주가는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저자는 복잡성의 증가가 ‘사일로 효과’를 증대시킨다고 지적한다. 사일로 효과란 조직 내 부서들이 다른 부서와 담을 쌓고 내부의 이익만 추구하는 현상이다. 곡식 또는 사료를 저장하는 원통형 창고인 사일로에 빗대어 조직 장벽과 부서 이기주의를 가리킨다. 복잡성이 증가하면 조직 내 다양한 관계를 관찰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협업 및 소통이 힘들다. 저자는 씨티그룹이 2008년 위기를 맞고, 소니가 한때 몰락해가던 원인으로 사일로 효과를 든다. 씨티그룹은 리스크관리 부서와 투자 부서 간 협업이 안 돼 서브프라임 대출의 위험에 노출됐다. 소니는 디지털로 바뀌는 음악시장에 대한 공동 전략을 도출하지 않고 자사 제품끼리만 경쟁했다.

복잡성의 반대는 단순성이다. 저자는 “중요한 목적을 이루려면 간단명료하고 단순할수록 힘을 발휘해 목적을 이루기 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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