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우승의 결정적 순간 만든 우즈처럼
모두 절망의 나락에서 일어설 수 있기를
곽금주 < 서울대 교수·심리학 >
지난 15일 끝난 제83회 마스터스 경기에서 타이거 우즈가 우승한 것은 그야말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귀환’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마이클 조던 등 많은 사람이 감동의 메시지를 보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명예인 ‘대통령 자유의 훈장’을 우즈에게 수여하기로 했다. 이번 경기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지키던 프란체스코 몰리나리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우즈와 같은 조가 돼 그보다 앞서고 있는 유리한 상황이 오히려 심한 압박감을 준 것 같다.
인간은 어느 정도의 압박이 있을 때 더 긴장하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런 압박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초크(choke) 현상’이다. 개인이 부단한 노력을 통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열등한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현상을 말한다. 압박을 느끼면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걱정이나 자기 의심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결정적 순간(clutch)’에 되레 강해지는 사람이 있다. 운동선수 중에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 레지 밀러 그리고 미식축구의 조 몬태나를 꼽을 수 있다. 압박이 느껴지는 극한의 상황에서 업무수행 능력이 되레 향상되는 게 ‘클러치 현상’이다.
초크와 클러치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 가장 유명한 경기는 1994년 미국 프로농구(NBA) 동부 챔피언 결정전인 뉴욕 닉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 경기다. 인디애나의 간판선수 레지 밀러는 종료 9초를 남기고 무려 8점을 넣어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이뤄냈다. 경기 막판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것에서 유래해 경기 막판이 되면 이를 ‘밀러 타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NBA 공식 후원업체 중 하나인 맥주회사 밀러가 항상 종료 시간을 앞두고 광고를 해서 밀러 타임이라고도 한다.
클러치 현상은 압박이 느껴질 때 방해 요소들을 차단하고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다. 불리한 주변 상황이든,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든 이를 막아내고 더욱 긴장해 몰입하는 태도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상황보다 압박이나 부담을 느낄 때 긴장감과 흥분으로 강한 에너지가 솟구쳐 성공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번 경기에서 우즈는 침착했다. 12타, 15타 이상의 점수차를 기록했던, 천하무적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섹스 중독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나락에 떨어졌던 고통, 몇 번의 재기에도 메이저대회에서 번번이 실패한 ‘초라한 황제’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차단했을 것이다. 우즈는 이번에도 우승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초반에는 초라함과 안타까움의 연속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지막 라운드에서 역전 우승의 클러치 수행 능력을 보였다. 그 순간 그는 과거의 오만한 우즈가 아니라 무리하지 않는 겸허한 우즈였다. ‘골프 황제’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과거를 딛고 꿋꿋이 일어나 ‘중후한 중년의 황제’로 귀환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누구에게나 화려한 과거가 있고, 나락에 떨어진 고통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과거든 압박 상황에서 더욱 더 목을 조이는 초크 현상이 몰려올 수 있다. 그런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면 미래는 그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과거를 차단하고 스스로를 나약하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지우면서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내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에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압박이 주어질수록 냉정한 판단으로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기업과 자영업자는 물론 개개인이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클러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과거를 차단하고 다시 집중할 수 있는 클러치 수행으로 우리 각자의 ‘위대한 귀환’을 만들어보자. 인생의 그 어떤 나락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올라올 수 있는 위대한 귀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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