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증시 급등은 이럴 때 나타난다"는 월가 투자자

입력 2019-04-26 06:48   수정 2019-04-26 07:32


"지금 뉴욕 증시를 둘러싼 분위기는 상당히 차분하다. 주가는 이럴 때 더 오른다."

지난 23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뉴욕 증시가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월스트리트의 한 투자자를 만났습니다.

올들어 주가가 계속 올랐지만, 사실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는 별로 뜨겁지 않습니다. 아직도 투자를 주저하거나 향후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꽤 됩니다.

이는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각종 설문에서도 드러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가 매월 글로벌 펀드매니저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을 보면 지난 11월 펀드매니저의 3분의 1이 "미국 증시가 정점을 지났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3월 조사에선 글로벌 주식에 대한 자산 비중이 3%에 불과했습니다. 대신 현금보유 비중이 4.6%로 2009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4월 초 실시된 조사에서는 주식 비중이 17%로 극적으로 뜁니다. 지난 3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증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17%도 여전히 장기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제가 만난 투자자는 "항상 이럴 때 증시는 더 오르더라"라고 말했습니다.


다들 투자를 주저하다가 한꺼번에 몰릴 때 급등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버블이 만들어진 뒤에야 약세장으로 진행될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는 "주변을 보면 지난 분기에 돈을 번 투자자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경기를 우려해 투자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1분기 주식을 샀을까요.

바로 미국 기업들입니다. 기업들은 1분기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시행했습니다. S&P 500 기업들은 지난 1분기에 227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였습니다. 이는 작년 1분기 1430억달러보다도 59% 급증한 규모입니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세운 사상 최대 자사주 매입 기록인 1조달러를 올해 다시 경신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기업들이 사들이는 자사주 규모는 장난이 아닙니다.

뉴욕 증시에서 기업들은 매년 발행주식의 2% 가량을 자사주를 사들인다고 합니다. 2%는 작은 규모일까요. 수많은 연기금들이 대형주 주식 상당수를 장기 보유하는 걸 감안하면 유통주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자사주는 한 번 사면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가가 내린다고 매물화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주가가 나쁠 때면 매수세를 강화하는 강력한 매수주체입니다.

지난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도 이런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증시가 멜트다운(급락)이 아닌 갑자기 과열하며 계속해서 상승하는 멜트업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핑크는 지난 16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금리 인상에 대비해 투자를 자제해왔지만 금리 인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은 빠르게 채권시장으로 옮겨왔지만 아직 증시로는 이동하지 않았다. 현재 투자자들은 기록적 규모의 현금을 갖고 있고, 좋은 자산이 부족한 만큼 글로벌 증시의 멜트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록적 규모의 유동성이 있고, 이들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때면 주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예측입니다.

실제 현금을 쥐고 있던 투자자들은, 주가가 예상외로 계속 오르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경제 지표가 지속적으로 좋게 나오고, 기업 실적도 추가로 개선된다면 대기하던 뭉칫돈이 증시로 몰릴 수 있습니다.

실제 글로벌 펀드 유출입 자료를 보면 올들어 미국 주식 펀드와 글로벌 주식 펀드에서는 자금이 계속 유출돼 채권 펀드로 가는 모습이었는데요. 지난주에는 미국 주식펀드로 자금이 유입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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