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돈산업 붕괴시킬 '돼지열병' 차단해야

입력 2019-04-26 18:01  

치사율 100%인 돼지 전염병
여행객 휴대 축산물 반입 안돼

오연수 < 강원대 교수·수의학 >



영화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전염병은 인류의 근원적 공포다. ‘전염병 아포칼립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염병 발생은 사회적 재난 상황과 연결된다. 사람의 전염병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전염병도 그 결과는 사람에게 부메랑처럼 치명적으로 돌아온다.

또 하나의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얼마 전엔 이 전염병과 관련, 관계부처가 대국민 합동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이 전염병이 국내에 유입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낯설다. 국내에서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토종돼지에게 별 증상 없이 유행하던 바이러스인데, 돈육 무역과 맞물려 유럽에서 감염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출혈성 열병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모든 바이러스는 타깃 세포를 ‘특이적’으로 감염시킨다. 이 바이러스는 혈관을 특이적으로 감염시킨다. 혈관을 따라 출혈성 병변을 일으켜 전신의 혈관이 아프게 되면서 온몸에 출혈을 일으키고 고열을 동반한다. 사람의 에볼라,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증후군 등이 이 그룹에 속하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되면 전파 속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국내의 집약적 축산구조 탓이다. 만에 하나 멧돼지에 감염될 경우엔 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고 치사율이 100%에 이르기 때문에 감염이 시작되면 국내 양돈산업은 붕괴될 게 틀림없다.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농림축산검역본부, 생산자단체인 한돈협회와 함께 국제수역사무국(OIE) 예찰기준에 따른 혈청검사, 공항·항만에서 압수한 불법 휴대 돈육 및 돈육 가공품에 대한 항원검사에 더해 매개체인 물렁진드기의 국내 서식 여부까지도 조사해 왔다. 2017년 3월 몽골 접경지역에서 사육하는 돼지에게서 발병한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태스크포스를 꾸려 국경 방역을 강화했다.

그런데 지난해 8월에 중국 여행객이 반입한 가공육품에서 이 바이러스 유전자를 검출한 적이 있다. 올 1월에는 일본 여행객의 휴대 축산물을 공항에서 압수했는데, 최근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분리했다고 발표했다. 만약 이 바이러스가 제약 없이 세관을 통과해 유입됐다면 어느 지역으로 어떻게 퍼져나갔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해외여행객은 축산물을 국내에 반입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축산업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방역한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가 잔존해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는 말린 고기에서 300일, 냉동품인 경우에는 1000일 동안 생존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가 감염됐을 경우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재입식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발병역사가 긴 유럽도 현재까지 재입식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축산업을 악성 해외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축산 농가만의 일도, 정부만의 일도 아니다. 국민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는 어떤 형태의 축산품이든 반입하지 않는 작은 실천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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