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부탁해요"…野에 SOC사업 예산 80% 배정한 정부

입력 2019-05-0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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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중진의원 지역에 집중
국회 통과 위한 '꼼수' 논란



[ 서민준/하헌형 기자 ]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편성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대다수가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 지역구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추경 처리에 비협조적인 야당의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꼼수’를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야당 실세에게 집중된 SOC 증액

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9년 국토교통부 추경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변경안 사업설명자료’를 분석한 결과 도로 확충 사업 예산으로 잡힌 1490억원의 79.9%(1190억원)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당 의원 지역 사업에 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4일 ‘지역 경제 회복 지원’을 명분으로 도로와 항만 등 인프라 투자 예산 약 2000억원을 추경에 집어넣었다.

추경 SOC 예산을 지역별로 보면 한국당 의원 지역구 사업에 840억원이 몰렸다. 의원 수로 따지면 이른바 ‘실세 의원’을 중심으로 13명(지역구 97곳의 13%)에 이른다. 국회부의장인 한국당 이주영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선 거제~마산 국도 4차로 신설 사업 예산이 80억원 증액됐다. 정우택 전 원내대표도 청주시 북일~남일 국도의 사업비 80억원을 챙겼다. 황영철 의원은 춘천~화천 국도 건설 공사 예산을 60억원 늘리는 ‘성과’를 거뒀다. 황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다.

민주평화당은 지역구가 14개에 불과하지만 의원 3명(21.4%)이 혜택을 봤다. 증액 예산은 240억원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인 황주홍 의원은 대덕~관산~용산 국도 등 2개 사업에서 예산 120억원을 더 따냈다.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의원 지역구에도 한 곳씩 도로 사업비 증액이 이뤄졌다. 반면 지역구가 115개로 가장 많은 더불어민주당은 의원 4명(4%)이 300억원을 따내는 데 그쳤다.

또 다른 SOC 사업인 항만 분야(1051억원)에서도 김도읍 한국당·전재수 민주당 의원(300억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243억원), 이철규 한국당 의원(210억원) 등 야당 의원 실적이 두드러졌다.

정부 “우연의 일치”라지만…

기재부는 SOC 예산의 야당 쏠림에 대해 “증액이 가능한 사업을 추려내다 보니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식의 ‘나눠주기식’ SOC 사업 배정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추경 취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추경의 원활한 국회 통과를 위한 야당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 SOC 사업을 ‘거래 수단’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신규 사업을 발굴해 고용과 투자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기존 사업의 공기를 앞당기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도 “추경을 투입해도 사업 공정률이 당초 목표보다 1~2%포인트 개선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세먼지 문제 해결, 경기 침체 방지 등을 위해 급박하게 편성한 추경에서조차 정치적 고려가 여전하니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추경을 빌미로 지역구 잇속을 챙겼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전국에 SOC 사업이 고루 분산돼 있는데 유독 야당 지역구 사업만 증액이 필요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추경 국회 통과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야당 지역구 SOC 예산을 많이 챙겨주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그 비중이 80%나 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이 처리한 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해 추경을 포함한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고 있다. 추경안에 대해서도 국가재정법이 정한 추경 요건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재해 추경과 관련되지 않은 경기 부양 추경은 ‘총선용’이라며 협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정해둔 상태다.

다만 산불과 지진 등 재난 대처를 위해 편성한 추경 사업 상당 부분이 강원과 경북 등 한국당 의원 지역구와 관련돼 있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 일각에서도 “막무가내로 추경 심사를 거부할 경우 재난 대응에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서민준/하헌형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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