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稅 놔두자니 복분자주 역차별…'酒를 어찌 하오리까'

입력 2019-05-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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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종량세 개편 고차방정식 놓고 '고심'

맥주는 종량세 전환 유력하지만
증류·과실주 셈법 훨씬 복잡



[ 오상헌/이태훈 기자 ]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주세법 개편안을 놓고 기획재정부가 ‘종량세 고차방정식’을 푸느라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제조원가의 OOO%’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從價稅)를 ‘L당 △△△원’으로 과세하는 종량세(從量稅)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기는 세수 감소, 주종·업체 간 형평성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묘수를 찾기 힘들어서다. 국내 주류업체들이 최근 가격을 올린 것도 막판 변수가 되고 있다. “종량세 도입으로 혜택을 보는 업체들이 이 시점에 가격을 올리는 게 말이 되느냐. 철회하지 않으면 세제개편도 없던 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정부 일각에서 나올 정도다.

맥주 종량세 전환은 확정적

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주세법 개편과 관련해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 전체 주종 전환 등의 안을 놓고 청와대 및 여당과 곧 협의에 들어갈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주·맥주 세제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기재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단 맥주는 종량세 전환 가능성이 높다. 국내 업체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불거진 유일한 주종인 만큼 종량세로 해결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4~6도의 단일 주종이어서 종량세 전환 작업도 간단하다. 1년 동안 종가세로 거둔 맥주 세금을 그해 생산·수입된 전체 맥주량으로 나누면 종량세의 과세 기준이 되는 ‘L당 세금’이 나온다.

지금은 국산 맥주에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을 과세표준으로 잡고 여기에 113%(주세+교육세+부가세)만큼을 부과한다. 수입 맥주는 ‘수입신고가+관세’에 113%를 매긴다. 판관비와 이윤에 대해선 세금을 내지 않는다. 종량세로 바뀌면 똑같이 L당 835원 안팎의 주세가 붙는다. 자연스럽게 국내 업체가 내는 세금은 줄어들고 대다수 해외 업체는 늘어나게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입 맥주에 붙는 세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 데다 기네스 등 일부 고급 맥주는 오히려 떨어져 ‘수입 맥주 네 캔=1만원’ 판매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주·양주 포함 여부 놓고 고심

증류주와 과실주의 셈법은 훨씬 복잡하다. 도수와 원가 구조가 각기 다른 술이 증류주와 과실주란 큰 항목으로 한데 묶여 있어서다. 그렇다고 증류주에서 소주만 떼어내 세금을 적게 매기는 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 된다. 예를 들어 증류주를 종량세로 전환하려면 ‘알코올 도수 15도를 기준으로 L당 500원의 세금을 매기고 1도 오를 때마다 100원씩 추가한다’는 식으로 해야 한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이렇게 하면 반사이익은 위스키 업체에 돌아간다. 기재부 방침대로 소주에 붙는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WTO 규정을 지키려면 위스키에 붙는 세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15도=500원’을 기준으로 1도마다 100원씩 오르는 구조로 짜면 17도짜리 소주에는 700원이, 40도 위스키에는 3000원이 세금으로 붙는다. 지금은 수입신고가 1만원짜리 중저가 위스키도 1만1300원(113%)을 세금으로 낸다. 과실주도 마찬가지다. 복분자주(16도)는 도수가 높다는 이유로 100만원짜리 프랑스 고급 와인(13~14도)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기재부가 고민하는 대목이 여기에 있다. 위스키와 고급 와인에 붙는 세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소주, 복분자와의 가격 차가 좁혀지면서 상대적으로 국산 술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수 감소와 소주·복분자주 역차별에 대한 해법은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종가세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다만 두 시스템을 혼용하면 주세법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했다.

기습가격 인상에 기재부 ‘부글부글’

최근 들어 새로운 변수도 생겼다. 맥주 1위 오비맥주와 소주 1위 하이트진로, 위스키 1위 디아지오가 일제히 제품 가격을 5~8% 인상한 것. 업체들은 원가 인상을 이유로 들었지만 기재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종량세 전환으로 수익성이 좋아질 게 뻔한데 가격까지 올린 건 지나치다는 이유에서다. “소주와 맥주 가격이 안 오르는 선에서 주세를 바꾸겠다”는 기재부의 선언이 대놓고 무시당한 데 대한 불쾌함도 더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기재부가 최근 맥주 등 국내 주류업체에 ‘가격 인상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정부 일각에서 ‘가격 인상을 철회하지 않으면 세제개편을 없던 일로 하자’는 강경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상헌/이태훈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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