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하나 더 물었을 뿐인데…金부장, 이직 협상 실패한 까닭은

입력 2019-05-02 17:01  

경영학 카페

원하는 연봉 관철시켰지만…
"출근 한달만 미뤄도 되나" 묻자
인사책임자, 질문도 요구로 파악
수용한계 넘었다 판단 채용 철회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모 부장은 마음이 들떴다. 꿈에 그리던 경기 판교의 정보기술(IT) 업체로부터 지난달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사 책임자와 만나 협상에 들어간 김 부장은 몇 가지 걸림돌을 만났다.

우선 연봉이 예상보다 낮았다.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인사 책임자는 김 부장이 받는 급여와 동일한 수준으로 연봉을 맞춰주겠다고 했다. ‘3개월 수습’ 조건도 문제였다. 모든 직원에게 적용되는 인사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김 부장은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인사 책임자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수습 기간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이제 됐습니까?” 인사 책임자는 물었다. 김 부장은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서울로 이사하는 것은 제 가족에게 작은 일이 아닙니다. 아내는 새 직장을 알아봐야 할 테고요. 근무 시작 일을 한 달만 미뤄도 되겠습니까.” 인사 책임자는 “생각해보고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1주일 뒤 김 부장에게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인사 책임자였다. “그동안 말씀드렸던 채용 제의를 철회합니다.”

김 부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출근을 한 달 뒤로 미뤄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한번 꺼내 보고자 했을 뿐이다. 김 부장은 지인을 통해 내막을 알아봤다. “그런 식이라면 입사 후에는 더할 것”이라는 게 회사의 판단이었다. 인사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채용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직은 무산됐다. 물론 김 부장은 현재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회를 날린 것에 대해서는 크게 자책하고 있다. 인사 책임자의 제안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고 생각한다.

김 부장이 협상에 실패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협상은 상호작용적이다. 상대방에게 추가로 요구할 때 상대방도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를 물고 늘어지려 한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 상대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 제안보다 좀 더 나가보는 것이다. 상대가 어디까지 양보해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한속도가 시속 100㎞인 고속도로에서 시속 105㎞로 달린다고 해서 속도위반으로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속 120㎞를 넘긴다면 자신의 운을 과신하는 것이다. 김 부장은 마지막에 ‘물어봐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인사 책임자는 그 질문을 요구로 들었고, 수용 한계선을 넘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계선은 가늠하긴 어렵다. 그래서 노련한 협상가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예컨대 인사 책임자가 제시한 조건을 그대로 수락하는 것이다. 꽤 괜찮은 조건이지 않은가. 그 정도에서 수락해도 나쁘지 않다. 대신 다른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출근을 한 달 후로 늦추는 것은 어렵겠죠”라고 넌지시 조건을 던져보는 것이다. 핵심은 ‘요구’가 아니라 ‘의사 타진’이다. 공을 상대에게 넘기는 것이다. 받아주면 좋고 아니면 마는 식이다.

한 번 지나간 협상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명심하자.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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