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DB손보, 0~30세로 확대
업계 1위 삼성·한화손보도 합류
보험사 '과열 마케팅' 비판도
[ 임현우 기자 ] “고객님, 어린이보험에 가입하는 건 어떠세요? 서른이 넘어 다른 상품을 드는 것보다 보험료도 싸고 보장은 훨씬 좋거든요.”
요즘 보험설계사들이 20대 직장인을 만나면 이렇게 ‘어린이용 상품’을 추천할 때가 많다.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 명의로 들라고 권하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미성년자로 한정했던 어린이보험 가입 연령을 30세까지로 잇따라 높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작년 4월 DB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를 시작으로 현대해상, KB손해보험, 흥국화재,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 주요 손해보험사가 어린이보험 가입 가능 연령을 30세로 상향했다. 지난달에는 손해보험업계 1위 삼성화재와 한화손해보험도 합류했다. 업계 관계자는 “어린이보험이 ‘어른이보험’이 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생명보험사들의 어린이보험은 아직 20세까지만 받고 있다.
어린이보험은 자녀의 질병, 상해 등 의료비나 일상생활 중 각종 배상책임 등에 대비한 상품이다. 이 시장의 오랜 강자는 현대해상이다. 2004년 내놓은 ‘굿앤굿어린이종합보험’은 지난해까지 323만 건, 1757억원어치 팔렸다. 현대해상 측은 “출시 후 15년째 같은 상품명을 유지하고 있고, 국내 신생아 세 명 중 한 명꼴로 가입한 장수상품”이라고 설명했다.
DB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가 어린이보험을 성인에게도 팔기 시작하면서 점유율 경쟁에 불을 댕겼다. 지난해 4월 가입 가능 연령을 20세에서 30세로 올렸다. 외부 판매조직인 독립보험대리점(GA)을 중심으로 사회초년생을 파고들어 쏠쏠한 재미를 봤다.
보험업계 실적의 잣대는 초회보험료(신규 가입자의 첫 보험료)다. 메리츠화재 어린이보험의 초회보험료는 지난해 2분기 39억원에서 올 1분기 82억원으로 늘었다. 신규 가입자의 30% 이상이 성인으로 알려졌다. DB손해보험 역시 연령 상향 이후 월간 초회보험료가 두 배 넘게 뛰었다.
현대해상은 30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어린이보험 상품을 추가해 맞불을 놨다. 이후 다른 업체들도 일제히 가세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어린이보험이 주력 상품은 아니지만 시장 전반의 흐름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가입 대상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저출산 영향으로 어린이보험의 잠재적 수요층이 줄어드는 점도 이런 경쟁을 불러온 배경으로 꼽힌다.
보험 가입을 생각하고 있는 20대 소비자로선 나쁠 게 없다. 어린이보험은 성인용 상품보다 보험료가 통상 20%쯤 싸다. 3대 질병인 암·뇌·심장질환을 포함해 성인보험에 들어 있는 웬만한 보장을 100세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망보험금, 간병자금 등은 빠져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보장을 추가할수록 보험료가 많이 올라 성인보험과 별 차이가 없어지기도 한다.
업계 한쪽에선 상품의 본질을 벗어난 ‘과열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향후 손해율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최근 급증한 가입자 중엔 무리한 영업에 넘어간 사례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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