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초긴장 국면 진정시킨 건 평가할 만…이기적 사고방식이 실패 원인
한·일 외교 역사상 최악…한·미 동맹 균열, 한·중, 한·러 ‘미적지근’
원점부터 재점검, 총정비해야
오는 10일 출범 2주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점수를 매기기 힘들 정도로 결과가 좋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11번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극에 달했던 긴장 국면을 진정시킨 성과는 인정하지만, ‘대가’가 너무나 컸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에 대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다 비핵화와 관련된 아무런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이른바 4강 외교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혹평을 받았다.
한국경제신문이 각계 각층의 오피니언 리더 1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역시 10점 만점 기준으로 5점을 밑돌았다. ‘남북 교류 및 긴장 완화’ 부문은 6.06점, ‘외교·통상 이슈 대응’은 4.74점이었다. ‘다자외교 강화’는 4.64점이었다. 국가별로는 대일 관계가 3.16점으로 가장 낮았다. 한·미 관계는 4.6점, 대중 관계는 4.49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7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외교부 차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노 딜’로 끝난 뒤 한국 정부의 입지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좌절하지 말고 현 ‘소강 국면’을 한반도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난 1년간 북핵 문제에 ‘올인’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로 인해 주변 4국 외교는 사실상 방치 상태였다. 지난달 11일 한·미 정상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건 ‘하노이 회담’ 전 미국의 생각을 읽어내는 데 실패한 결과라고 본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된 것도 아니다. 아직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가 발생한 2016년에 머물러 있다. 중국 내 투자 여건이 개선된 것도, 중국 단체 관광객이 다시 한국을 찾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정체 상태인 건 마찬가지다.
한·일 관계는 역사상 최악. ‘일본이 자동적으로 미국을 따라갈 것’이라 보고 대북제재 국제 공조에서 일본을 제외한다면 외교적 패착으로 이어진다.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이행해 대북 경제협력이 재개된다고 가정할 때, 한국보다 월등한 자금력을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문 대통령이 역사와 안보 문제를 분리 대응한다고 했지만, 3·1운동 100주년 열기 속에 역사가 안보를 완전히 삼켜 버리고 말았다. 주변 4강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평가를 내리기 애매하다. 하지만 높은 평점을 주긴 어렵다. 남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중간 단계지만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그리고 한·미 동맹, 대중, 대일 외교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대일 외교의 경우 일본발(發) 문제라고 다들 얘기한다. 하지만 평가할 때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세기 초반 일본에 병탄돼 식민지가 됐는데 일본은 나쁜 놈이니 당했다’고 끝내자 말하는 것과 똑같다. 모든 걸 아베 정부의 책임이라고 돌리면 마음은 편하다. 지난 역대 정부로부터 시달리던 문제들을 ‘안 좋은 유산’이라 해 버리면 쉽다.
그런데 외교란 건 현 상황에서 어떻게 국익을 관철할 것인지 따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일 관계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도 일본이 우리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일본이 우리의 훼방꾼인 것처럼 본다. 일본은 일본대로 문재인 정부를 친북 성향으로 본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도 합리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우선순위를 두고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위안부 화해 치유재단 해산의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논리를 잘 만들어야 했다. 일본에서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는 안 된다고 하면서 재단을 해산한다면 일본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대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반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북핵을 둘러싼 외교에서도 특별한 성과가 없었고, 지역 외교에도 소홀했다는 시각’에 동의한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이끌어낸 건 매우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외의 분야에서는 특별히 우리가 공헌하고 있는 게 없다. 어떤 목표가 설정됐는지도 의문이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100점 만점에 75점이라 본다. 한·일 관계가 불안정한 부분이 있다. 이전 정부가 잘못된 합의를 했다고 하면 다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상 방치했다. 아베 정부를 북핵 문제나 한·일 관계 전반에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대북정책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초기에는 중재자 역할 많이 강조했다. 그런데 사실상 이 갈등구조를 잘 예측하지 못했던 측면 때문에 지난해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진전된 게 없다.
긍정적인 부분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큰 트러블 없이 진행되고 있고, 북한 문제를 계속 협의하면서 한국의 공간 만들어 가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높이 평가한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미·중 사이의 갈등 구조가 심화될 수 있는데 일정하게 현상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점수를 줄 수 있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가 자국과 의견을 같이하길 바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한·미 관계에 중점 많이 두면서 중국은 한국의 대외 정책에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신(新)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 같은 건 역대 어느 정부나 추진하던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같은 것이다. 특정 국가를 적대시하지 않고 다변화를 시도하는 건 늘 있어 왔다. 실질적 효과를 내기보단 슬로건을 내세우는 성격이 강하다. 동남아 국가들도 좋아하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무리하거나 소외시키면 하면 문제가 된다. 내용을 어떻게 채워갈지에 대해 노력이 필요하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점수를 매기자면 100점 만점에 한 85점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흐름을 정확히 포착해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잘했다.
앞으로는 기존 방법을 변화시켜야 한다. 지금까진 청와대와 국가안보실 중심의 톱 다운 형식이었다. 이젠 각 부처 장·차관, 민간 싱크탱크,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잘 활용해야 한다.
‘플레이어’들이 남북한과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으로 확대됐단 것도 변수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상황이 많이 바뀌기도 했다. 새 틀을 갖고 정책을 총점검해야 한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C학점도 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남북정상회담 지난해에 세 번 열렸지만 북한으로부터 비핵화와 관련된 그 어떤 약속도 못 받아냈다. 도리어 북한이 비핵화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확인했다. 두 번째로 한·미 동맹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특히 한·미 연합사 문제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세 번째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국가인 일본과의 관계가 사실상 파탄이 났다.
남북, 대미, 대일 외교가 모두 실패한 가운데 역내 외교 주동적 역할,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 이유다. 중재자 외교론이 허구란 사실이 드러난 게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딱히 100점 만 점에 몇 점이라고 점수를 매기긴 어렵다. 하지만 높은 점수는 못 주겠다.
외교·안보가 전반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한, 한·미 관계 모두 어렵다.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고, 한·중도 지지부진하다. 한·러 관계도 별로 눈에 띄는 거 없다.
미국이 한국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남북관계를 한·미 동맹보다 더 중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결국 우리 정부의 ‘굿이너프딜’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발점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과거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기초로 뭔가 바꿔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외교·안보 정책을 펴 왔다. 그런데 실제로는 잘 안 됐다. 결국 북한 핵문제로 연결된다. 비핵화는 안 되고 있다. 비핵화에 도움이 되어 보겠다고 한·미 연합훈련도 축소 조정했다. 그런데 오히려 북한은 이것마저도 비난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의 경우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과연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전환 조건이 마련될지 의문이다.”
이미아/임락근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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