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세계최고 수준으로 비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되레 늘어
[ 정연일 기자 ] 독일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했고 전기요금만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4일 ‘독일의 실패한 사업’이란 기사에서 독일 정부가 시도한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독일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국에서 운전 중인 원자력발전소 17기를 2022년까지 가동 중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매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평균 320억유로(약 42조원)를 쏟아붓고 있다.
슈피겔은 하지만 풍력,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효율로 인해 전력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독일 국민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슈피겔은 “에너지원 전환 사업은 독일 통일만큼이나 값비싼 프로젝트가 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독일 脫원전, 統獨만큼 비싼 비용"
전기요금만 올라 국민 불만 폭주
독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우선 전기요금 상승 때문이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25%가량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상승률이 9%인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큰 오름폭이다.
이 때문에 독일 가정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전기를 쓰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6년 기준 메가와트시(㎿h)당 328.8달러(약 37만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덴마크(330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OECD 전체 평균(161.7달러)의 두 배 수준이며, 한국(119.1달러)의 2.76배에 달한다.
독일 국민의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다. 높아진 전기요금 부담과 더불어 과도하게 늘어난 대체에너지 발전시설 설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슈피겔은 “시민들의 반대로 풍력발전기와 태양열발전소 건설이 지연되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는 탈원전과 함께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지지부진하다. 원전 감축으로 인해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선 갈탄 등 화석연료를 통한 발전을 줄일 수 없어서다. 지난해 독일의 화석연료 발전량(79.3GW)은 2000년(74.2GW)과 비교해 되레 증가했다. 현재 전체 발전량의 약 38%가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독일 정부는 당초 내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대의 6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감축량 목표치 달성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결국 지난해 1월 해당 목표 달성을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슈피겔은 독일이 계획대로 완전한 탈원전·탈화석연료화를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다섯 배 많은 대체에너지 발전 설비를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향후 2조유로(약 2620조원)에서 3조4000억유로(약 4455조원)가량의 비용이 들 것으로 내다봤다. 슈피겔은 “독일의 에너지원 전환 사업은 독일 통일만큼이나 값비싼 프로젝트가 돼가고 있다”고 했다.
독일처럼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던 다른 나라도 방향을 바꾸고 있다. 원전 의존율이 70%를 넘는 ‘원자력 강국’ 프랑스는 그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려다 2017년 말 계획을 수정했다. 영국은 2010년 원전 비중이 16%였지만 지난해엔 21%로 오히려 높아졌다. 대만은 지난해 11월 국민투표를 통해 그간 추진 중이던 탈원전 정책을 폐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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