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기자 ] 일본 도쿄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다마(多摩)신도시. 1971년 입주를 시작한 이곳은 한때 ‘꿈의 신도시’로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빈집이 즐비해 일부 현지 언론들이 ‘유령 도시’라고 부른다. 2000년대 초 40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는 24만 명 선으로 급감했고,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노인 국가’ 일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높다. 작년 말 기준으로 시범단지인 나가야마의 고령인구 비율은 33.6%로 일본 전체 평균(28.1%)을 크게 웃돈다.
도시 기능 쇠퇴는 심각한 수준이다. 상가의 30% 정도가 문을 닫았고, 300여 곳에 달했던 초등학교는 절반이 폐교됐다. 신도시 내 상당수 지역이 노후화를 넘어 슬럼화까지 진행되고 있지만 집값이 크게 떨어져 재개발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유령도시'로 전락한 일본 신도시
가족 구성 변화 등이 ‘탈(脫)신도시’를 가속시키고 있다. 초기 입주자인 단카이(團塊)세대(일본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적인 가족 구성은 ‘직장인 남편+전업주부+자녀 2~3명’이었다. 하지만 맞벌이가 일상화되고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대도시와 멀고 중대형 평형 위주로 지어진 ‘베드타운(bed town: 큰 도시 주변의 주택지역)’인 신도시는 급속한 인구 유출을 겪고 있다.
분당, 일산 등 한국 1기 신도시 롤모델이었던 다마신도시 쇠락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과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고성장과 인구 팽창 시대의 산물인 신도시가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시대에는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한국의 신도시, 혁신도시, 준(準)신도시급 택지지구 남발은 후유증을 더 키울 수도 있다. 도쿄권과 오사카권에 5개 신도시(도심 재개발 제외)를 건설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이 도시개발 시험장이다.
신도시 개발은 도시행정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고속도로와 전철을 따라 수도권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주변 도시들이 연결되는 ‘도시 연담화(連膽化)’가 촉진되고 있다. 지방 인구를 빨아들여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킨다. 수도권 교통량이 급증해 출퇴근과 물류 수송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가중시킨다.
3기 신도시 '속도조절' 필요
신도시 개발은 ‘도시 양극화’ 주범으로도 꼽힌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경기 고양시 창릉지구(813만㎡·3만8000가구), 부천시 대장지구(343만㎡·2만 가구) 등 3기 신도시는 서울과 지척인 데다 교통망을 잘 갖추고 있다. 노후화가 진행 중인 일산 등 1기 신도시와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도 불편한 파주운정 등 2기 신도시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에서는 이미 혁신도시들이 기존 도심의 공동화(空洞化)를 야기하고 있다.
주요 국가 중에서 한국처럼 주택 공급을 위해 신도시를 계속 건설하는 나라는 없다. 신도시 원조인 영국은 물론 프랑스, 일본 등은 1980년 중반 이후 신도시 개발을 중단했다. 수평적 확장(신도시) 대신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도시 재생 등 수직적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풀고 자금을 지원해 슬럼화된 도심을 주거·상업·업무 기능이 어우러진 초고층·고밀도 복합단지로 개발하고 있다.
정부도 더 늦기 전에 ‘신도시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도시계획을 고민해야 한다. 도시 재생 활성화,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지원, 2기 신도시 자족기능 확대 등 서울 도심과 기존 신도시 슬럼화를 막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에 맞춰 부동산 시장 수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필요하다면 3기 신도시 계획 조정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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