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월 초 공개할 것으로 예상됐던 주류세 개편안이 또 연기됐다. 세금 및 통상 문제에 여론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풀만한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칫 '종가세→종량세'로의 논의마저 철회될까 수제맥주 업계는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제맥주업체인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이달 초 양조장을 경기도 이천에 추가로 열었다. 어메이징브루잉은 이곳에 연간 500만L의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지었다. 전국 유통망도 갖춰 주세가 '종량세'로 개편되면 본격적으로 열릴 수제맥주 시대를 대비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대규모 양조장을 추가로 연 것은 당초 4월 말 주류세 개편안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맥주산업은 장치산업으로 설비를 갖추고 균일한 맥주의 맛을 내기까지 최소 6개월은 소요되기 때문에 정부를 믿고 미리 투자를 집행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같은 경우 이번엔 주류세 개편이 진짜 이뤄질 줄 알고 미리 대규모 양조장을 추가로 지었다"며 "연이은 결렬에 종량세 전환을 믿고 투자한 업체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앞서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애초 정부가 4월 말이나 5월 초 발표를 목표로 삼아, 주류세 개편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었지만 현재 지연되고 있음을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4월 말에서 5월 초로 미뤄왔던 주류세 개편안 발표가 다시 한 번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김 실장은 "주종 간, 동일 주종 업계 간 종량세 전환에 이견이 일부 있어 조율과 실무 검토에 추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마무리되는 대로 개편안을 발표할 것이며 구체적인 시기는 별도로 공지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은 현행 종가세를 종량세로 개편할 시 소주 가격이 오를 수 있어서다. '제조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에서는 소주가 맥주보다 원가가 낮아 세금을 덜 냈는데 '무게'와 '도수'가 기준이 되는 종량세로 바뀌면 세금부담이 늘어 소주값 인상은 불가피하다.
서민들이 즐겨찾는 생맥주의 가격이 오르는 반면 위스키 값은 낮아질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주류세 개편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이유다.
동일 용량을 기준으로 했을때 생맥주는 그동안 캔맥주나 병맥주보다 낮은 가격에 출고가가 형성돼 왔다. 용량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면 가격 인상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의견이다. 반면 제조원가가 높은 위스키는 종량세 도입 시 종가세 체계에서보다 세금이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가격 경쟁력이 지금보다 더 생긴다.
맥주업계라고 종량세로의 개편을 모두 반기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법인을 두고 해외에서 제품을 수입하는 외국계 맥주회사들은 현행 종가세에서 더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김 실장도 "맥주 업계는 대체로 종량세 개편에 찬성하지만 일부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4개 국내 수제맥주업체 중 3곳이 폐업했고 20여곳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미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경쟁력을 잃은 상황에서 주류세 개편이 계속 미뤄지면 가격 경쟁력에 밀려 올해 수제맥주업체 20~30%가 줄줄이 폐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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