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부산지역 중견 해운사 동아탱커가 국내 금융기관과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계약(BBCHP)을 맺어 운영하던 선박 12척에 대해 법원이 채권단의 담보권 실행을 막으면서 촉발된 ‘동아탱커 사건’을 두고 법원이 고민에 빠졌다. 담보 채권자의 협력 없인 유명무실해질 수 밖에 없는 회생절차를 앞두고 채권·채무자 양측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서다. 법원이 회생 개시 결정을 내린다면 선박금융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법원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아무런 합의 없이 이른바 ‘노딜’(no deal) 기각될 경우 동아탱커가 사실상 파산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
◆합의점 못 찾는 동아탱커와 채권단
동아탱커 사건은 지난 4월 2일 동아탱커가 회생절차를 신청하자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 등 채권단이 BBCHP가 맺어져 담보권을 가지고 있는 선박 12척의 회수를 시도하면서 촉발됐다. BBCHP는 해운사가 선박을 구매해 직접 운영하는 대신, 채권단이 세운 해외 SPC가 대신 선박을 건조하고 해운사는 일정 기간 동안 용선료를 지불하고 선박을 운용하는 선박금융방식이다. 용선료로 원리금을 완납 시 선박의 소유권이 해운사로 넘어온다는 점이 일반 나용선계약과의 차이다.
채권단은 동아탱커가 회생절차를 신청하자 동아탱커의 선박 12척에 대한 BBCHP 대출이 기한이익상실(EOD,계약 즉시 종료하고 대출상환) 조건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회사에 선박을 반납(반선)할 것을 요구해왔다. 선박을 돌려받으면 다른 해운사에 배를 매각해 운영하는 것이 채권 회수 및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낫다는 판단에서다.
동아탱커는 선주인 해외SPC에 대한 회생신청이란 강수를 뒀다. 선박에 대한 담보권을 갖고 있는 채권단이 배를 돌려받아 다른 해운사에 넘기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회사의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에서다. 법원은 일단 동아탱커의 손을 들어줬다. 국내 법원이 재판관할권 여부가 불분명한 해외SPC에 대해 회생신청을 접수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채권단은 “법원의 조치가 BBCHP 대출이 주를 이뤄온 선박금융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발해왔다.
이에 법원은 지난 29일 이해관계자 협의회를 열고 동아탱커와 수은, 산은, 해양진흥공사 등 채권단, 이들을 대리하는 태평양 김앤장 율촌 광장 등 법무법인 관계자들을 모아 합의점 도출을 시도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이날 협의회에서 동아탱커 측은 회사가 영업흑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만기 연장 등 조치가 이뤄졌다면 회생절차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임을, 채권단은 원리금 미상환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각각의 의견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시도 기각도 결정내리기 힘든 법원
양측이 협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검토 중인 법원은 고민이 깊어졌다. 법원은 △BBCHP상 해외SPC가 취등록세를 제외한 납세, 거래처, 대출처, 운영주체, 직원 구성 등 모든 실질이 국내 법인과 같은 성격을 띄어 국내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별다른 제한 없이 BBCHP상 반선요구가 이뤄질 경우 사실상 회생을 신청한 회사가 파산수순을 밟게 돼 회생절차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점을 고려해 해외 SPC에 대한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구조조정 업계에선 법원이 최종적으로 기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고 있다. 회생신청이 기각되는 것은 △신청이 성실하지 않거나(단지 보전처분만을 바랄 뿐 회생절차 진행할 의지 없는 경우 등) △회생절차에 의함이 채권자 일반의 이익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 한한다. 동아탱커는 대규모 선박처분손실을 기록한 2016~2017년을 제외하면 매년 300억~4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 100억원 가량의 당기순이익을 내 회생 가능성이 없는 업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의 갱생을 목표로 하는 회생법원으로선 채권단이 변제 시기 조정에만 합의한다면 동아탱커가 충분히 채무를 변제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높다. 기각 시 채권단이 계획했던 담보권 실행이 이뤄져 동아탱커가 파산에 이르는 상황을 법원이 용인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설령 개시 결정을 내린다해도 문제가 적지 않다. 현재처럼 채권·채무자가 대립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담보권자 75%의 동의를 요하는 회생계획이 원활하게 짜질 수 없어서다. 포괄적 금지명령 이후 국내 선박금융이 실제로 경색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법원으로선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구조조정 경험이 풍부한 한 전직 채권단 관계자는 “법원은 이미 법리적으론 동아탱커 측의 주장을 들어준 셈”이라며 “다만 걱정하는 것은 선박금융 위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원이 자신에게 손을 내민 기업을 져버리긴 힘들다”며 “사실상 채권 채무자 간 자율적인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노딜 파국 막으려면 출구전략 모색해야"
실제로 양측이 처한 입장은 회생신청 초기와는 달라진 상황이다. 수은 산은 등 채권단은 채무 변제 가능성이 낮지 않은 동아탱커 사건에서 반선 조치로 실제 동아탱커가 파산할 경우 정치권, 해운업계로부터 역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업 성격은 다르지만 국책은행이 컨테이너 선사인 현대상선에 대한 조단위 공적자금이 지원되는 상황에서 동아탱커에 대해선 반선 조치까지 나선 것에 대한 해운업계 내의 시선도 곱지 않다. 동아탱커 또한 향후 지속적인 경영을 위해선 수은 산은 등 국책금융기관으로부터 선박금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언제까지 채권단과 대립각을 세울 순 없는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출구 전략으로 법원이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자율구조조정(ARS)프로그램이 거론되고 있다. ARS프로그램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이 채권자들과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시도할 경우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최대 3개월까지 보류해주는 제도다. 법원으로선 개시 결정을 유보하고 선박금융 위축 가능성 등 법원이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위험)에 대해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동아탱커와 채권단 역시 ‘노딜’ 파산이라는 파국을 피하고 협상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법정관리 전문 변호사는 “법원이 해외 SPC에 대한 회생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이해관계자 각각이 처한 목적함수가 바뀐 상황"이라며 "개시냐 기각이냐를 다투기보단 합의점 도출을 위한 출구전략이 필요한데 ARS가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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