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법조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함께 나오고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강화한다는 측면은 바람직하지만 형사재판 기간이 더욱 장기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제도에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에서 한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해도 “조사 당시 그렇게 말한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 조서의 증거능력이 생긴다. 반면 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피고인이 부인하면 증거가 될 수 없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 조서도 경찰 조서와 마찬가지로 법원에서 증거능력을 갖지 못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방향성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그동안 검사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서를 작성해놓고 피의자에게 이를 제대로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아 방어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법정에서 죄를 가리는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법관이 서류보다는 검사와 피고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재판의 장기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피고인이 검찰 조서 내용을 부인하면 법정에 증인과 참고인 등을 불러세워 다시 심문해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0명의 증인 신문을 신청한 것을 두고 ‘재판지연’ 비판이 나오는데 앞으로는 이런 모습이 자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송촉진법에 따르면 형사재판의 1심은 검찰이 기소를 한 날부터 6개월 안에 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1심 판결이 6개월을 넘어서 이뤄지는 비율은 2014년 16.2%에서 2017년 18.1%로 늘어났다. 지난 3월말 현재 각급 법원에서 내려진 1심 단독 형사재판의 평균 처리일수는 145.5일이었다.
신속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관련 인프라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법관 증원 논의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사정원법에 따라 전체 법관 수는 3214명으로 묶여 있는데 이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판사들이 지금처럼 한꺼번에 10~20개 사건을 동시에 검토하는 병행심리가 아니라 한 건씩 해결해나가는 집중심리를 하도록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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