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두려움 III : 아이의 변비 트라우마

입력 2019-05-14 18:04  

최연호 < 성균관대 의대 학장·소아청소년과 i101016@skku.edu >


소아 변비는 아이와 가족, 의사 모두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이유식 시기에 처음으로 변이 굳는데, 배변 시 항문이 약간 찢어져 통증이 생기고 아이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아이는 그 통증 때문에 변을 참기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오지만 여기서 매우 심각한 양자 간 갈등이 노출된다. 변을 안 보려는 아이와 달리 부모는 어떻게든 변을 보게 하려 한다.

수일간 변을 보지 못한 아이에게 치료로 선택된 것은 관장이다. 물론 부모와 의사의 선택이다. 아이로선 관장이 뭔지 모른다. 컴컴한 방에 끌려 들어가 당한 폭력일 뿐이다. 이 정도면 ‘트라우마’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하면 아이는 변의를 느끼는 순간 어딘가 숨어 버린다. 누군가 항문에 해코지를 할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아이의 자세를 보면 다리를 붙이고 있다. 반면 엄마는 아이를 뒤에서 안고 다리를 벌려준다. “응가.” 엄마는 도와주려는 거지만 아이에겐 엄마가 공포유발인자다.

치료는 좋은 경험을 장기간 유지해 나쁜 기억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 소아에게 사용하는 변비약은 몸에 흡수되지 않아 부작용이 거의 없다. 1년 정도 장기간 복용하면 그동안 아이가 편하게 변을 보면서 나쁜 기억이 결국 사라진다. 성인에게는 이런 변비가 없다. 아이의 변비는 질병이 아니다. 두려움과 기억의 문제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나심 탈레브가 언급한 ‘어설픈 개입(naive interventionism)’을 어른이 하게 된다. 먹고 배변하고 잠자는 생리적 현상은 원래 아이에게 ‘자기 결정권’을 주고 맡겨야 한다. 그런데 뭔가 해주고 싶은 온 가족의 ‘행동 편향(action bias)’이 개입하게 된다. 아빠도 퇴근 후 첫마디가 “우리 애 변 봤어?”이다. 할머니 역시 옆에서 “변비”를 외친다. 아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가 매일 가족 안에서 반복되니 아이의 트라우마는 커질 수밖에. 하물며 의사도 어설프게 개입한다. 기억을 없애려면 장시간이 필요한데 한두 달 약을 쓰다가 조금 좋아지면 투약을 중단한다. 당연히 변은 또 굳고 항문의 고통은 다시 찾아온다. 약을 끊을 때마다 아이의 기억은 강화되니 아이는 걱정과 공포에 더욱 예민해지고 다루기 어려운 성격으로 변해간다.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불만을 낳는다. 불쾌하면 제거하려 집착하고, 즐거우면 배가하려 집착한다. 고통이 지속되면 고통을 피하려고 무엇이든 한다. 즐거우면 즐거움이 사라질까 두려워한다. 석가모니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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