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지역, 정치, 일상 등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허물없이 나누며 한 주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다. 산 앞에 서면 이해인 수녀의 시 ‘산을 보며’가 떠오르곤 한다.
‘늘 그렇게/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나를 지켜주십시오/기쁠 때나 슬플 때/나의 삶이 메마르고/참을성이 부족할 때/오해 받은 일이 억울하여/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나는 창을 열고/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되고/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그 푸른 침묵 속에/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산을 보며, 이해인)
‘산을 보며’의 화자는 도움을 청하고 있다. 그 상대는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되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山)’이다. 공부하는 학생도, 일하는 직장인도, 일자리 구하는 사람도, 장사하는 분들도 모두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이런저런 사정으로 삶이 팍팍한 요즘이다. 누구나 한 번쯤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산이 나에게도 있었으면…’이라고 바란 적이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에게는 그런 ‘산’이 있는가?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가족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친구일 수 있다. 직장 동료나 선배도 해당될 수 있다.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때로는 불러도 보고, 기대어도 보고, 바라볼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고 축복이다. 필자에게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내 편에서 믿고 지켜주는 아내가 ‘산’이다. 힘들고 슬플 때 무조건 참을 수만은 없다. 울분을 표현하든, 자기 성찰과 반성의 계기로 삼든 한 단계 더 성숙한 자기를 만들어 갈 때 진정한 ‘산’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이 시에서 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낀다. 예전에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데 비해, 근래 들어서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되뇌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 가족과 이웃은 물론 많은 분들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산을 바라보고, 아픔과 번뇌도 함께 나누며, 누구에게나 친근한 ‘우리의 산’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막스 베버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나는 왜 정치를 하려 하는가?’라는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나는 그 답의 일부를 이 시에서 찾는다.
이해인의 시가 우리에게 위안이 되듯, 무릇 정치인의 자세와 언행도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카시아 꽃내음 가득한 봄날처럼 우리 정치도 사회와 국민에 대한 도덕성과 책임성에 기반해 달콤 포근한 향을 내뿜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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