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예상과 기대

입력 2019-05-16 18:02  

좋은 배우는 무대를 예측 않고 기대하듯
최선을 다한다면 시간이 그 기대 채워줘

이경재 <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



1749년, 노년의 작곡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은 ‘테오도라’라는 오라토리오(성서적인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 줄거리는 있지만, 연기는 하지 않는 성악곡)를 작곡한다. 그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와 함께 바로크 시대 최고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요즘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수상음악’, 연말에 자주 공연되는 ‘메시아’, 오페라 아리아 ‘울게 하소서’ 등은 헨델의 다양한 음악적 활동을 짐작하게 한다.

‘테오도라’는 헨델 말년의 음악적 원숙미도 그렇거니와 그와 함께 작업해온 대본가 친구와의 협업을 통해서도 그 진가를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다. 런던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영어로 쓰인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봄 초연됐을 때 런던 관객들은 큰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 작품은 실패를 맛봤다. 그의 극적인 다른 작품들에 비해 구약성서 이야기의 주제가 너무 많이 생략돼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실패 원인은 작품이 초연되기 1주일 전쯤 런던에 일어난 지진이었다. 헨델의 팬과 후원자들이 지진을 피하고 있었으니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많았을 리 만무했다. 대가의 초연작이 성공하리라 예상할 수는 있어도, 지진이 도시를 덮칠 것이라는 예측은 할 수 없었다.

헨델보다 두 세대 후 작곡가인 요세프 하이든은 1808년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기념 공연을 위해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으로 향했다. 가난한 마차 바퀴 수선공의 장남으로 태어나 빈소년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고, 개인 교습을 하며 사환일과 구두닦이 일을 하기도 했던 그다. 20대 중반에서야 어렵사리 한 백작 집안의 악장을 맡아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30년 가까이 에스터하치 후작의 음악가로 봉사하며 매일 음악을 준비하는 삶을 견뎌냈다.

그런 시절을 보낸 하이든으로서는 자신의 음악이 이렇듯 칭송받으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하이든은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천지창조’가 장대하게 울리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음악을 듣고 있던 하이든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음악을 작곡했을 무렵 나는 경건하거나 겸손하지 못했다. 음악을 차분히 음미하고 싶어서 천천히 일했다. 매일 아침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소망을 들어주셨다.”

오페라 작품을 공연하다 보면 배우들은 예상치 못한 관객의 호응을 얻을 때가 있다.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관객의 반응이 터지면 배우들은 더 큰 에너지를 얻어 공연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고 연습한 것과 달리 그 부분을 과장하거나 힘을 주면 오히려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훌륭한 배우는 무대를 ‘예상’하지 않고 ‘기대’한다. 예상이 어긋나면 무대 위의 에너지 흐름은 삐걱대기 쉽다. 함께하는 다른 배우에게도 영향을 준다. 기대하는 배우는 그 기대가 빗나가더라도 연습한 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헨델과 하이든은 자신의 작품이 잘될 것이란 예상보다 음표 하나하나에 기대를 걸고 작곡했을 것이다. 예상보다 기대로 채운 삶이 더 풍요롭다. 봄꽃이 피기를 예상하기보다 기대해 보자. 시간은 그 기대를 항상 채워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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