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지식흐름 막는 제도 바꿔
혁신이 혁신 낳는 융합의 길 터줘야
이지홍 < 서울대 교수·경제학 >
‘머니볼’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경이로운 20연승 기록을 달성한 지 16년이 지났다. 그 후 메이저리그는 매년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해마다 많은 팀이 예측불허의 경쟁을 벌이며 흥행몰이를 하는 까닭이다. 한편 유럽 축구에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승승장구 중이다. 급기야 올해엔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결승을 전부 프리미어리그 팀으로 채워 넣는 쾌거를 이룩했는데, 이는 유럽 클럽축구 역사상 첫 사건이다.
오클랜드의 성공 요인, 즉 머니볼 원칙은 빌리 빈이라는 전설적인 경영자가 완성한 작품이다. 몇 배의 연봉을 쓰는 팀들과 대등한 승률을 기록한 이 작은 구단(매출 등 외형 기준)은 전형적인 저비용 고효율, ‘프로세스 혁신’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빌리 빈은 2002시즌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 존 헨리의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쿨(?)하게 거절한다. 헨리는 대신 30세의 테오 엡스타인을 사장으로 영입하고, 엡스타인은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를 연달아 우승으로 이끌며 두 개의 저주를 깬 사나이가 된다. 공교롭게도 지난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 리버풀의 구단주도 헨리다.
빌리 빈의 혁신과 메이저리그의 비약적인 성장, 나아가 프리미어리그의 유럽 축구 제패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우리는 그 답을 보스턴과 리버풀의 구단주 헨리, 그리고 사장 엡스타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헨리와 엡스타인은 혁신(빌리 빈의 머니볼)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봤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들의 성공은 빌리 빈의 혁신이 더 많은 구단에 전파되는 계기가 됐고 메이저리그의 혁신은 대서양 건너 축구산업으로까지 흘러갔다.
그렇다. 혁신이 혁신을 낳도록 지식이 흘러야 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오클랜드의 새로운 경영기술을 받아들인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이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성공을 경험한 여러 구단은 사업을 글로벌화하고 새로운 산업에까지 신기술을 적용했다. ‘지식의 전파’, 이것이 바로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 폴 로머가 규명한 혁신과 성장의 연결고리다.
저출산 고령화,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중국의 부상, 꼬꾸라진 성장률…. 한국 경제의 앞날이 어둡다. 그 어느 때보다 혁신성장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다. 혁신 없는 성장은 없다. 그러나 고인 물이 썩듯이 흐르지 않는 혁신은 결국 멈추게 돼 있다. 사회 일부 안에서만 도는 지식은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의 결과물이 사회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혁신성장을 창출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4차 산업혁명을 일으켜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우리 사회가 깊게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지식의 전파를 둘러싼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 데이터와 통계가 야구를 성장시키고, 야구가 축구산업의 발전에 일조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는 융합과 시너지다.
신지식을 체득하는 데 직접 배우고 해보는 것만 한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곧 전교생에게 인공지능(AI) 교육을 시작한다고 한다.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수학한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 제2, 제3의 우버를 탄생시킬 것이다. 필자가 재직 중인 서울대의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15년째 변치 않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생겨난 많은 제도와 규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원활한 지식의 흐름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시급히 점검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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