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터널공사로 각광받는 'TBM 공법'
터널 전문업체 아주지오텍
굴착장비로 전진하며 뚫어
[ 이정선 기자 ] 전남 여수시 광양만에서 이순신대교로 연결된 묘도. 이 섬 오른쪽 준설토 매립지에는 땅속으로 90m를 파내려간 수직구가 있다. 터널 전문업체인 아주지오텍이 시공 중인 해저터널(전력구) 공사 현장이다. 이 터널은 묘도에서 여수국가산업단지까지 전력망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 중이다.
아주지오텍은 수직구 바닥에서 장비를 조립한 뒤 지난달 중순부터 여수산업단지를 향해 광양만을 가로지르는 터널 굴진(掘進)에 들어갔다. 역대 가장 깊은 곳에서 작업하는 최장 구간 전력구 공사다. 현재 50m가량을 뚫었다. 이 구간은 발파 공사로 터널을 뚫는 재래식(NATM) 방식이 아니라 첨단 터널굴착 장비를 활용하는 기계화 터널 시공 방식(TBM: tunnel boring machine)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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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계 활용해 터널 시공
TBM은 통조림통(can) 형태로 만들어진 거대한 강철 굴착 장비다. TBM의 맨 앞에 있는 ‘커터 헤드’라는 원반 형태의 장치가 회전해 암반 등을 잘게 부수고 전진하면서 터널을 뚫는다. 굴진 과정에서 쌓이는 흙은 TBM 내 관로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TBM 장비 뒤쪽으로 옮겨진 뒤 수직구를 통해 지상으로 배출한다. TBM 직경은 터널의 용도에 맞춰 3.5m에서 17.5m까지 다양하다. 길이는 8~10m 정도가 일반적이다. TBM 운영을 위한 후방 설비 길이는 최대 100m에 이른다. 현장 근로자들은 캔 모양의 TBM 외판 안에서 작업하므로 안전하다.
기계화 터널 시공 가운데 국내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실드(shield) TBM’ 공법이다. TBM이 터널을 뚫고 지나가면 터널 벽면에 ‘세그먼트’라고 불리는 콘크리트 블록 조각들을 레고처럼 조립해 원형 터널을 만드는 방식이다. 앞에서 흙을 파면 곧바로 뒤쪽에서 벽을 다지는 원리다. 세그먼트는 ㎠당 700㎏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문준배 아주지오텍 기술영업본부 본부장은 “TBM 공법은 현재까지 개발된 어떤 터널 굴착 공법보다 안전하다”며 터널을 파는 동시에 벽면을 완성하기 때문에 발파 공법에서 자주 겪는 붕락(崩落) 사고도 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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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화 터널 시공은 화약을 터뜨려 터널을 뚫는 재래식 발파 방식에 비해 진동, 소음, 분진이 적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민원이 제기되기 쉬운 도심 구간이나 안전성이 특히 요구되는 해저·하저 구간에 적합한 공법으로 꼽힌다.
TBM 공법은 터널을 뚫자마자 콘크리트 블록으로 벽면을 마감하기 때문에 발파 공법처럼 터널 시공 과정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지상으로 다 빼낼 필요도 없다. 지하수 고갈에 따른 지반 침하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전통적인 방식의 발파 공법은 줄이고 TBM을 활용한 기계화 터널 시공 방식을 늘리는 추세다. 싱가포르에선 지하터널의 모든 구간을 TBM 공법으로 시공하도록 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도 도심지의 70~80%를 TBM 공법으로 시공했다. 49.9㎞에 이르는 영불 해저터널, 15.1㎞의 일본 도쿄만 횡단 해저터널 등 초장대 해저터널에도 TBM 공법이 적용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세계 TBM 터널 시장 규모는 118조9382억원에 이른다. 2009~2013년에 비해 7.5% 성장했다.
국내에 기계화 터널 시공 방식이 도입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이후 TBM 공법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시공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서울지하철 9호선 영등포~여의도 구간, 분당선 왕십리~선릉 구간, 대곡~소사 복선전철의 김포공항~행주산성 통과 구간 등에 TBM 공법이 사용됐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한강 통과 구간에도 도입될 예정이다.
“정부 발주 방식 바뀌어야”
다만 TBM 공법은 터널 시공 단가가 발파 방식에 비해 10~15%가량 높다는 것이 단점이다. 수입에 의존하는 TBM 장비가 비싼 탓이다. 독일 일본 등에서 주로 생산하는 TBM 가격은 직경 8m짜리 기준으로 120억원 수준이다. 최근 중국 기업도 TBM 생산에 대거 뛰어들고 있다.
TBM 방식의 안전성과 효율성이 높은 만큼 정부 발주 방식을 변경해 경제성을 보완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발주 방식이 구간별로 잘게 쪼개는 공구 분할 방식 위주여서 터널 시공업체들이 TBM 공법을 적용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TBM 공법의 장점이 많은데도 경제성에 막혀 도입 실적이 많지 않은 문제가 있다”며 “구간을 늘려 발주해 TBM 시공을 늘리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여수=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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