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기자 ] “오늘 밤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적 중 하나를 만났다.”(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자유국민연합(자유당+국민당)이 18일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극적인 뒤집기로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그간의 여론조사와 출구조사 결과를 뒤엎은 것이어서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호주 유력지들도 ‘기적(miracle)’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자유국민연합은 지난 2년여 동안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노동당에 계속 밀렸고, 총선 직전까지 극심한 내분에 시달렸다. 총선 출구조사에서도 선호도(48%)가 노동당(52%)에 4%포인트 뒤졌다.
개표 초·중반까지 열세였지만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자 공업지역인 빅토리아주(州) 등에서 선전을 거듭해 마침내 판세를 뒤집었다. “최저임금 인상, 부자 증세, 급속한 온실가스 감축 등 노동당의 포퓰리즘 정책 부작용을 걱정한 ‘조용한 다수’가 친시장 정책을 내건 보수당으로 돌아섰기 때문”(시드니모닝헤럴드)이란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선거 결과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과 비견된다”고 평가했다. 당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미국 우선주의’와 ‘경제 부흥’ 등을 내세워 ‘침묵하는 다수’의 표를 끌어모아 낙승이 예상되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경제 이슈가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던 대표적인 사례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다. 당시 존재감이 별로 없었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란 구호를 내세워 현직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 공화당 후보를 눌렀다.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 승리로 한때 지지율이 80%를 넘었으나 침체된 경제에 발목 잡혀 따 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던 재선에 실패했다.
최근 집권 3년차를 맞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도 ‘경제’를 빼면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해 12월 23%로 추락했던 마크롱 국정지지도는 최근 1년 새 최고치인 30%로 올라섰다. 규제 완화, 감세 등 적극적인 친기업·친시장 정책으로 실업률이 2009년 이후 최저치(8.7%)로 떨어진 덕분이다.
지난 20년간 중남미를 휩쓸었던 좌파 물결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급속히 퇴조하고 있는 요인도 ‘경제’로 설명된다. 만연한 부정부패에다 무차별 복지살포, 공무원 대거 증원 등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가 거덜나자 좌파정권들이 선거에서 줄줄이 패퇴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경제)만큼 국민에게 중요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조용한 다수’ ‘침묵하는 다수’가 나설 때엔 정권의 운명은 이미 갈리고 난 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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