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피해 '탈한국' 급증
개방화·국제화 시대
'글로벌 스탠더드' 외면은 '공동화' 자초
지난 1분기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파생상품 거래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는 한경 보도(5월 21일자 A1, 4면)는 우리가 얼마나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안방에서, 출퇴근길 휴대폰으로 하는 선진국 시장 파생상품 거래가 일상이 됐다.
과도한 변동성과 고도의 위험성 때문에 과열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지나치게 위축돼도 문제인 게 파생상품 시장이다.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이 제 기능을 못 하면 주식 채권 통화 원자재 등 투자 상품의 거래에서 위험분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파생상품 시장이 몇 년 새 급속도로 위축된 주원인이 거미줄 같은 규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규제가 그렇듯, 이 시장의 규제들도 명분은 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보호라는 구실이 앞세워지면서 온갖 규제가 누적됐고, 그런 절차나 장치가 싫은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으로 가버리면서 국내시장은 쪼그라들고 있다.
국내시장을 억지로 누르는 바람에 해외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건 파생상품 시장만이 아니다. 국내 암환자들이 일본으로 가서 줄기세포치료를 받는 현실도 1163건(2017년)에 달하는 바이오 분야 규제 탓이다. 더구나 일본에서 시술되는 줄기세포치료제의 원천기술은 국내 기업이 가진 경우가 많다. 근 20년째 시범서비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 후발주자 중국은 정부가 나서 인공지능(AI) 기반의 원격진료를 활성화하면서 빅데이터 구축까지 내달리고 있다. 서울의 암 환자가 베이징 AI 의사로부터 진단과 처방을 받는 시대에 이미 들어선 것이다. AI·5G·빅데이터가 국경의 의미도, 원거리의 장애도 없애면서 글로벌 풍선효과는 심화될 것이다.
높은 상속세·법인세나 고용·노동 관행 등을 이유로 해외로 나가는 자산가나 기업의 이전 행렬은 법적·제도적·행정적 압박에 따른 풍선효과로 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해외 이주자가 2200명으로 전년의 2.7배로 늘어났고, 이 중 상당수가 상속세 부담을 피하려는 부자들이다. 상속세가 없는 곳으로 이주하는 부자들 행렬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탈원전 정책 이후 한국을 떠나는 원전 전문가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의 풍선효과로 볼 수 있다. 내국인들에 대한 카지노 규제가 해외 카지노관광을 부채질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획일적 규제 교육이 싫어 무리하면서라도 자녀를 유학 보내려는 학부모도 여전히 많다.
개방화·국제화된 시대다. 종종 투자와 교역에서 장벽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국경이 낮아지고 인적·물적 이동이 가속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단일 국제시장에서 만국이 경쟁하고, 국가 간 비교도 일상화되고 있다. 국내만 보는 낡은 규제와 퇴행적 행정으로 기업과 개인, 시장을 억누르면 글로벌 풍선효과를 부추길 것이다. 개방과 국제화의 물결을 타면서 성장해온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 받아들이며 선도하는 길 외에 대안이 없다. 이를 부인하면 해외자본 이탈, 인재와 국부 유출, 산업 침체와 금융 붕괴로 미래와는 계속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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