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형규 기자 ] 스위스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알프스의 수려한 풍광에 놀라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바꾼 데 놀라고, 살인적인 물가에 놀란다는 것이다. 인구 850만 명의 소국이 시민의식, 기업가정신, 삶의 질 등에서 ‘최상의 나라’(미국 와튼스쿨 조사)로 꼽혔으니 더 놀랍다.
스위스 하면 빙하와 만년설, 소떼와 요들송, 그림 같은 집 등 낭만이 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이미 100여 년 전 융프라우(4158m) 전망대까지 레일과 침목을 지고 올라가 트램을 놓은 스위스인의 집념이 숨어 있다. 고산지대에 살면 대개 순박한데, 스위스인은 반대다. 배타적이고 까다롭기 그지없다. 스위스에서 가르치던 독일인 교수가 차별을 못 견뎌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세계 2위(8만2410달러)인 나라답게 ‘빅맥’세트가 우리 돈 약 1만5000원이다. 국제기구를 대거 유치해놓고 외국인에게는 더 철저히 뜯어낸다. 일전에 스위스를 둘러본 한국 기업인이 “일본인이 경제적 동물이면, 스위스인은 경제적 곤충(economic insect)”이라고 했을 정도다.
이 나라 환경과 역사를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가진 거라곤 산과 물뿐이고, 먹고살 산업이 없어 근세까지 선호직업이 용병이었다. 스위스 용병은 1527년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로마 약탈 때와 1792년 프랑스 루이16세의 궁을 지킬 때 최후의 1인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그 이유가 “우리가 도망치면 후손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16세기 영세중립국이 됐지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26개 칸톤(州)이 경쟁하는 연방국가지만, 위기가 닥치면 똘똘 뭉쳤다. 2차 대전 때 히틀러도 옥쇄를 각오한 스위스를 끝내 침공하지 못했다.
이런 ‘스위스 정신’이 오늘에도 면면히 이어진다. 스위스 국민은 3년 전 기본소득(월 300만원) 도입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킨 데 이어, 최근 법인세 인상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도 66.4%가 현행 유지를 택했다. 낮은 법인세율(최고 21.1%)을 올리라는 유럽연합(EU) 압력에도 친기업 국가로 남겠다고 버틴 것이다.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저하시켜 재앙을 가져올 것으로 여긴 스위스인의 경제 지력(知力)이라면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이 공짜복지 경쟁을 벌이고, 이미 올린 법인세를 또 올리려는 움직임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의 경제자유도(미국 헤리티지재단 조사)가 2년 새 23위에서 29위로 밀려난 반면 스위스는 세계 4위인 이유일 것이다. 경제마저 정치화하는 나라와, 경제를 최우선시하는 나라가 이렇게 차이 난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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