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독립성 최하위' 국민연금 그대로 두고 '5%룰' 완화 안 된다

입력 2019-05-21 17:54  

한국경제연구원이 그제 발표한 17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공적연금 실태 조사는 한국 국민연금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정부가 지배구조를 장악하고, 투자 회사의 주식의결권까지 행사하는 사례는 OECD에서 국민연금이 유일했다. 한마디로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와 운영방식이 선진경제권에서 가장 후진적이라는 의미다. 17개 회원국 중 14개국의 공적연기금은 주식 의결권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거나,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를 통해 행사하고 있다.

정부가 자금을 대지 않았는데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없다. 현직 장관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장(長)을 맡은 경우도 한국이 유일하다. 선진국에선 경영 개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제한 장치를 도입 중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일본 후생연금은 기업 투자 지분한도를 5%로 묶고 있다. 정부가 기금운용에 참여하는 노르웨이 정부연금펀드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은 국민연금 등의 경영 참여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그제 공청회에서 “건설적 주주활동을 장려하겠다”며 대량보유공시 규제(5%룰)를 대폭 푸는 방안을 띄웠다. ‘경영참여’ 목적으로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에게 부과되는 ‘지분변동 신고 의무’를 크게 완화하는 내용이다. 공청회 안(案)대로라면 임원 후보를 추천하고 경영진 해임을 요구하는 등의 중대한 개입도 ‘경영참여’가 아니라 ‘단순 주주관여’로 간주된다.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인데, 더 많은 경영개입을 하겠다는 건 심각한 방향착오다. 기업은 적폐이며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은 경영을 정치로 타락시킬 뿐이다. 정부가 지배구조를 장악하고, 투자전문가가 배제된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 할 일은 ‘5%룰’ 완화가 아니라 선진국처럼 ‘5% 이상 소유 제한’ 등을 서두르고, 연금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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