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호 기자 ] 필요충분조건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좋은 일터·일자리는 경제 성장과 함께 늘어나야 의미가 있다. 지속가능성 안정성 선호도 측면에서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1일 발표한 ‘경제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은 각각 2.4%, 2.5%다. 올해 전망치는 2개월 전보다 0.2%포인트 낮다. 미국(2.8%)은 물론 세계 평균(3.2%)도 밑돈다. 피부로 느끼는 일터나 일자리 창출 정도는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 산업 현장의 목소리다.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 약화로, 관광에 힘입어 한때 반짝했던 서비스산업은 유커 감소로 휘청이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이 그나마 기대하는 게 빅데이터 분야다.
태동 못하는 국내 빅데이터 사업
빅데이터 사업은 이용자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이라는 상충되는 개념을 전제로 한다.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은 빅데이터 사업을 유인하는 법을 앞다퉈 만들었다. ‘개망신 3법’으로 불리는 빅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된 배경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다루는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부처 간 협의와 시민단체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쳤다. 골자는 두 개의 큰 바탕을 마련했다는 거다. 하나는 국내 기업들이 빅데이터 관련 사업을 벌일 수 있는 법적 근거, 다른 하나는 세계 주요 국가의 데이터 보호 규제에도 통용되는 적합성이다.
산업계는 빅데이터 사업화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태동이 힘들다고 지적해 왔다. 개인정보 침해 없이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비식별 정보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범법 소지가 많다는 설명이다. 반면 세계 각국은 사업 선점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데이터 보호법을 만들고 법 테두리 안에서 외국 기업의 활용을 허용하는 등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사용 중이다. 지난해 5월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을 만든 EU가 대표적이다. GDPR과 적합하지 않은 데이터 사업은 원천 차단된다. 일본은 발 빠르게 개인정보보호법을 만들어 지난 1월 EU의 GDPR 적정성 평가를 마쳤다. EU에 빅데이터 사업 기반을 확보한 셈이다.
더 실기하면 국민 심판 부를 것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업들은 빠른 속도가 특징이다. 속도전에서 승패의 키는 타이밍이다. 구글 등을 통해 빅데이터 사업을 주도해온 미국과 4차 산업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온 중국과 인도도 관련법을 두고 대응하고 있다. 한국의 빅데이터법은 지난 4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 후 ‘올스톱’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6개월 뒤에 발효된다. 1분1초가 급한 산업계로서는 분통 터질 노릇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안 처리 일정이다. 조금 더 지체하면 내년 총선과 맞물려 19대 국회 처리가 무산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원점에서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빅데이터 사업화의 타이밍을 놓치고 좋은 일터·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 찾기’다.
빅데이터법을 대하는 국회의 태도는 여론과 경제와 행정부는 물론 미래 세대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개망신법’에 이어 ‘개무시’라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좋은 일터·일자리 창출의 기대주인 빅데이터산업의 봄날은 덧없이 가고 있다. 빅데이터법의 제자리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내년 총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는….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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