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녀 체벌권' 民法서 삭제 추진
[ 서민준 기자 ] 부모가 훈육 목적으로도 자녀를 때리지 못하도록 민법을 손질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아동 학대 가해자의 77%가 부모이고 한 달에 약 3명의 아이가 학대로 사망하는 상황을 바꾸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SNS) 등에선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사랑의 회초리’를 드는 것까지 정부가 금지하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친권자 징계권’에서 ‘체벌’ 삭제 추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법무부, 여성가족부는 23일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아동 체벌에 관대한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해 민법이 규정한 ‘친권자의 징계권’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금도 아동복지법에 체벌 금지 조항이 있지만 개인 간 관계 규율을 총괄하는 민법에서는 체벌을 사실상 허용해왔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 조항에서 징계라는 용어를 바꾸거나 체벌 금지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사랑의 회초리’도 못 들게 하겠다는 얘기다.
국제 기준도 고려됐다. 현재 민법상 부모의 징계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일본 정부도 지난 3월 징계권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가정은 물론 학교와 다른 모든 기관에서 체벌을 명백히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고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일각에선 국가가 부모의 자율성을 너무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학부모 단체의 관계자는 “가벼운 수준의 벌은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정부가 일괄적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건 지나치다”며 “손 들고 서 있기 등도 체벌로 봐야 하는지 범위도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SNS에 “학교에서도 교사가 학생의 눈치를 보는데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엄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법이 바뀌더라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미 법원에선 ‘부모의 징계권이 체벌까지 포함하는 건 아니다’는 판례가 형성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민법이 바뀌더라도 가해자 처벌 강화 등 가시적인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다”며 “국가가 아동 체벌을 원천 금지한다는 상징적 의미 정도”라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아동 학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을 바로잡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병원도 신생아 출생사실 통보 의무화
이번 대책에는 출생 신고도 없이 유기되거나 방치되는 아동을 줄이기 위해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담겼다. 지금은 출생 신고를 부모에게 맡기고 있는데 앞으로는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정부에 통보하도록 한다. 한 해 베이비박스 등으로 유기되는 아동은 261명에 이른다.
아동의 건강 관리도 강화한다. 스마트폰으로 아동의 영양, 운동량 등을 모니터링하고 상담해주는 ‘아동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을 한다. 비만아동의 체중 변화 등을 보건소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정부는 또 ‘놀이혁신 행동지침’을 만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이 아동을 대상으로 다양한 놀이사업을 펼치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 아이들이 놀고 쉴 시간이 부족해 정신 건강을 해치고 창의성을 기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하지만 아동의 놀이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은 학업 부담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어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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