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설득하는 '협상의 기술'…테이블 앉기 전부터 시작하라

입력 2019-05-23 17:28  

경영학 카페

'점입가경' 美·中 무역전쟁
양보없이 치고받는 이유는
'일보후퇴 이보전진' 전략 때문



상대를 만난 다음 협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사람은 하수다. 상대 얘기를 들은 다음 대응하면 이미 늦는다. 협상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이다. 진정한 협상은 상대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 노련한 협상가는 그래서 미리 움직인다. 상대를 만난 다음 설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대도 테이블에 나올 때 그냥 오지 않는다. 논리와 증거, 자료로 무장을 하고 온다. 그런 상대를 협상 테이블에서 만난 다음 설득하는 것은 무리다.

미·중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결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수천억달러 중국 수입품에 관세 폭탄을 예고한 데 이어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의 거래를 차단하겠다고 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 보복 관세를 언급하는 등 협상 보이콧 가능성을 제기했다. 양측이 서로 팽팽하게 맞선 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왜 이럴까.

로버트 치알디니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는 그 이유를 ‘일보후퇴 이보전진’ 전략에 있다고 해석한다. 예컨대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고 치자. 이때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것을 의도적으로 요구한다. 상대는 당연히 거절할 것이다. 그다음에 처음보다는 작지만 원하는 것을 다시 요청하면 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심리를 이용한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노사 간 임금협상에서 이런 전략을 자주 볼 수 있다. 노조는 처음에 말도 안 되는 높은 임금 인상률을 요구한다. 당연히 경영진은 거절할 것이고 그런 다음 점차 양보하는 협상 방법을 사용한다.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은 연방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임금협상에서 연봉을 한 푼도 올리지 않고 오히려 박수를 받았다. 레이건 정부 시절 연방정부 재정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감세정책으로 인해 수입은 줄고 방위비 증강으로 지출은 크게 늘었다. 재정 부실로 공무원들의 임금도 몇 년째 동결됐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정 상태가 무척 좋지 않습니다. 불가피하게 올해 공무원들의 임금을 5% 삭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공무원들은 모두 들고 일어나서 연방정부와 대통령을 압박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난 뒤 그는 도저히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 다시 기자회견을 요청했다. 그리고 중대 발표를 했다. “연봉 5%를 삭감하려던 모든 계획을 백지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결코 연봉 삭감은 없을 것입니다. 대신 연방정부 예산절감에 동참해 주십시오.” 많은 공무원이 이 발표에 환호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협상은 인식의 싸움이다. 상대방의 인식을 바꿔주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인식은 사전에 바꾸는 것이 사후에 하는 것보다 쉽다. 이런 측면에서 ‘일보후퇴 이보전진’ 전략이 효과적이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협상카드의 핵심은 ‘보안’이다. 측근도 속을 정도가 돼야 한다. 거기에 진정성이 보여야 제대로다. 만약 상대가 눈치챈다면 그 순간 헛수고가 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신뢰도 덩달아 추락한다.

둘째, 자주 사용하면 들통난다. 처음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상대에게 동일한 전략으로 계속 사용하다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한 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의 기본적인 심리를 잘 활용하면 유리하다.

이태석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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