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미국-이란 군사적 긴장
[ 선한결 기자 ] ‘세계의 화약고’ 페르시아만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전쟁 직전의 상황이다. 미국은 이란 핵협정을 탈퇴한 뒤 군사적 압박을 높이고 있다. 지난 5일 걸프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 등을 배치했다. 이후 이 지역에선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이 공격받고 사우디 원유생산시설에 드론(무인항공기) 공격이 발생했다. 미국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동에 1500여 명의 군인을 추가 파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란도 8일 핵협정 의무 중 일부를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미국과의 대결에서 강하게 맞서고 있다. 페르시아만의 정세가 왜 이렇게 꼬였고, 갈등의 핵심은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될지 세 가지 포인트를 살펴봤다.
(1) 트럼프 행정부 핵협정 탈퇴가 분쟁 씨앗
이란 핵협정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 6개국이 이란과 체결했다. 이란이 핵을 개발하지 않는 대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이란에 경제 제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과 유엔은 2006년부터 이란에 경제 제재를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부터 이란 핵협정 전면 개정을 주장했다. 주요 조치가 10~15년 내 해제되므로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미국은 이 ‘일몰 조항’을 없애고 탄도미사일 개발 제한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이란은 기존 협정을 위반하지 않은 만큼 협정을 개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유럽 국가들은 일몰 조항을 연장하는 방안을 절충안으로 내놨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5월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경제 제재를 재개했다. 당시 여러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먼저 강하게 때린 뒤 협상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경제 제재와 병력 배치를 통해 이란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그간 이란 기업과 조직, 개인을 대상으로 1000여 건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최근 미국의 병력 움직임도 이란엔 큰 위협이다. 미군이 중동에 배치한 USS 에이브러햄링컨함은 그 자체가 전투기 수십 대와 미사일 등을 탑재한 거대 항공전투부대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언급하며 저항하고 있다. 이란 남쪽에 있는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 하루 물동량의 20%와 세계 액화천연가스(LNG)의 3분의 1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폭격당하더라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내놨다. 또 ‘순교’라는 단어까지 꺼내며 저항 의지를 다지고 있다.
(2) 잇단 공격의 배후 이란 맞나
미국이 이란에 강공을 가하는 표면적 이유는 이란이 군사적 도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아랍에미리트(UAE) 동부 영해에서 배 네 척이 공격받은 것, 14일 사우디 아람코의 원유생산시설과 석유펌프장 두 곳이 공격당한 것, 19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주(駐)이라크 미국대사관 인근에 로켓이 떨어진 것 등 세 건의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미국 행정부는 보고 있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렇게 믿고 있다.
미 행정부는 하지만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않았다. 미 의회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21일 미 행정부는 상·하원 의원 대상 비공개 안보 브리핑에서 최근 중동에서 일어난 여러 공격 사건 배후가 이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공화당 의원 다수는 이에 동의했지만 이외 의원들은 대이란 강경파인 폼페이오 장관 등이 정보를 오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은 최근 미국을 자극한 이란의 움직임은 이란이 미국의 공격을 우려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첩보가 미 정보기관에 입수됐다고 보도했다. 무소속인 앵거스 킹 상원의원은 “미국의 방어적 행동을 이란은 도발로 간주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3) 전쟁 발발 가능성은
미국이 중동에 지상군까지 파견해 벌인 전쟁은 2003년 이라크전쟁이 마지막이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일까. 이란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한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1500명 추가 파병 계획을 발표하면서 “방어 차원”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가 전쟁에 나서기 위해선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밋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 등 주요 의원 다수가 중동 무력 개입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쟁안이 의회를 통과해도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한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에 병력 13만 명을 투입했다. 이란은 이라크보다 경제·군사 규모가 훨씬 크다. 이란 정규군은 52만 명,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12만5000명에 달한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 배치한 전력은 5만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이란과 전면전을 벌이기 위해선 다른 지역에 주둔하는 병력을 중동으로 대거 빼와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 베네수엘라, 남중국해 일대도 주시해야 하는 미국이 지금 택하기는 힘든 선택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확산방지국장을 지낸 에릭 브루어는 미국 매체 복스에 “미국이 이라크전 같은 지상전에 나선다면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지지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외교적 문제도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유럽과 이스라엘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유럽 각국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해 이란을 도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 편들기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무력 개입을 하는 것엔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선에 독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파 싱크탱크로 꼽히는 후버연구소의 래니 첸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일대에서 미군 병력을 줄이겠다는 것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며 “군사 행동에 적극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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