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 대학들 매물로 나와…대학도 구조조정 시대
[ 정의진 기자 ] 영남지역 A사립대는 최근 한국외국어대에 “우리 학교를 통째로 인수해 달라”고 제안했다. 재정이 어렵다 보니 학교 운영권을 서울의 큰 대학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얼마 후 이 지역의 다른 대학도 한국외대에 매각 의사를 타진했다. 의대가 없는 한국외대는 의대를 갖고 있는 두 대학의 제안을 고심 끝에 거절했다. 이같이 재정이 열악한 지방대 위주로 대학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전라도에 있는 한 4년제 사립대는 주변 대학과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년째 신입생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생 수가 줄면서 재정적으로 무척 어렵다”며 “생존을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입학정원 다 못 채운다
대학 재정이 부족해진 가장 큰 원인은 학령인구 감소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입학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이외 지역에 있는 152개 일반 사립대를 전수조사한 결과 2018학년도 정원 내 신입생 충원율이 90%에 미치지 못한 대학이 31곳(20.3%)에 달했다. 8개 대학은 정원의 절반을 채우지 못했다. 2017학년도엔 155개 대학 중 25곳(16%)의 충원율이 90% 미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충원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대학에 진학할 학생이 모집 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대입 역전현상’이 발생할 전망이다. 올해까지는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학교가 있어도 산술적으로는 신입생 수가 더 많았다. 내년부터 대입 역전현상이 벌어지면서 대학들의 충원 부족 현상이 한층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고3 학생이 치를 2020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입학 자원’은 총 47만812명이다. 대학이 모집하려는 입학 정원(49만3049명)보다 2만2237명 적다. 고등학교 졸업생 수와 대학 진학률, 재수생 등 요인을 모두 고려해 예측한 결과다. 정원 미달 현상은 지속적으로 심화해 2022학년도에는 역전 폭이 8만2089명에 달할 것으로 교육부는 추산했다.
입학 자원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대학 진학 대상인 만 18세 인구는 2017년 61만 명에서 2030년 46만 명으로 24%가량 줄어들게 된다. 대학 학령인구(만 18~21세)는 2030년 181만 명으로 2017년(264만 명) 대비 69%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자구책 마련에 사활 건 대학
대학들은 교원 임금을 삭감하는 등 재정 위기를 돌파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사립대의 예산 담당자는 “수년째 긴축재정을 하고 있다”며 “최근 입학금마저 폐지되면서 그나마 동결했던 전임 교원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학금은 등록금과 무관하게 신입생이 등록하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돈이다.
학생 부담을 덜어주자는 정부 압박으로 대학들은 어쩔 수 없이 입학금을 폐지했다. 이 담당자는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도 올해 2학기부터 시행될 예정이어서 재정 부담 요인이 단기간에 중첩되고 있다”며 “시간강사 대신 초빙 교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대학은 재정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학과를 통폐합하는 한편 보유 건물을 매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사립대 예산팀장은 “지방대 교직원끼리 모이기만 하면 비용 절감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다”며 “일부 학교는 건물을 매물로 내놓는 정도인데 고작 건물 하나 팔아선 종합대학 1년 예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NIE 포인트
학령인구 감소 외에 대학의 재정 위기를 불러온 다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대학 재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대학 위기를 해결할 정부의 역할과 대학의 자구노력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자.
정의진 한국경제신문 지식사회부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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