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금유연성만 높여도 '상생형 일자리' 늘어난다

입력 2019-05-27 17:49  

'광주형'이어 '구미형' 일자리 모델에 속도 내는 정부
기업에 고용 강요하는 '전시성 사업' 후유증 불가피
직무급과 개별근로계약 등 실효성 있는 조치 내놔야



정부가 ‘한국 수출 메카’ 구미산업단지에서 광주에 이은 ‘제2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밀어붙이고 있다. 다음달 ‘구미형 일자리 모델’ 발표를 목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구미시가 LG화학 삼성SDI 등과 접촉 중(한경 5월 27일자 A3면)이라고 한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상반기에 한두 곳은 구체화될 것”이라며 군산 구미 대구를 직접 거명하고 압박한 대로 점차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구미형 일자리’는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연초 합의한 ‘광주형 일자리’에 이은 두 번째 ‘상생형 일자리’다. 가동률 추락으로 구미 지역 민심이 요동치면서 정부의 밀어붙이기가 거세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상생형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 일자리 해법의 핵심이지만 진행과정에서부터 결과에까지 곳곳에 반(反)시장적 요소가 적지 않다. 광주형 일자리의 경우 기업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세금으로 공장 설립을 주도했다. ‘단체협상 유보’ 조항을 둬 임금을 한시적으로 묶기로 했다지만 지속을 장담하기 힘들다.

‘구미형 일자리’ 성사를 위해 정부와 구미시는 △공장 주변 인프라 확충 △임대료 할인 △세제 혜택 △통근버스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기업들에 제시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은 굳이 국내에 투자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터에 공장건설비까지 대주는 등 외국 정부의 지원에 비해 큰 매력도 없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업 경영이 지역 정서와 정치에 휘둘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상생형 일자리에 대한 이런 방식의 집착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어렵사리 일자리 모델을 출범시켜도 노사 합의가 깨지면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큰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하다. 상생형 일자리를 극렬 반대하는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 개입도 연착륙의 큰 걸림돌이다. ‘상생’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무리수를 두기보다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도록 지원하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임금유연성 제고를 통한 시장형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는 임금 조절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 실업을 막는 데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예컨대 각 기업이 신규 채용하는 직원부터 거품을 뺀 급여로 개별 근로조건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 기존 직원들의 급여에는 영향이 없으므로 노조가 반대할 명분이 없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잘만 정착되면 한국 산업계의 고질적인 ‘고비용 저효율’을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업무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직무급제 도입도 시급하다. 해마다 일정하게 기본급이 오르는 기존 호봉제와 달리 직무급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하에 직무단계에 따라 급여를 차등화하는 선진국형 임금체계다.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도 임금유연성이라는 큰 틀에 맞춰 융통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미취업자·실업자와 지자체가 간절히 바라는 최저임금의 지역별·연령별 차등화만이라도 열어준다면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임금 유연성 확보가 좋은 기업과 좋은 일자리 탄생으로 이어지고, 다시 임금이 오르는 선순환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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