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 격화와 달러 강세로 1200원을 턱밑까지 치솟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1190원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달 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까지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밑도는 수준에서 공방을 펼칠 것으로 전망했다. 3분기에는 이달 급등폭을 되돌릴 가능성도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이 봉합됐을 때의 얘기다.
◆ 원·달러 환율, 1200원 목전까지 급등 후 보합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17일 1195.7원(종가)까지 치솟으며 연고점을 기록했다. 지난달 17일 1134.8원과 비교하면 한달 새 60원 이상 올랐다. 종가 기준으로 2017년 1월11일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가장 큰 원인은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가능성이 불거져서다. 미국의 대중국 추가 관세 부과 결정 이후 국내 증시와 원화 가치가 동반 하락했다. 불확실성 확대로 안전자산인 달러가 상대적인 강세를 보이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1200원대 중반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 전환한 것은 이달 20일부터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1.5원 하락한 1194.2원에 마감됐다. 이후 조금씩 하락하며 지난 24일에는 1188.4원에 마감돼 1190원을 하회했다. 전날까지 6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목전에 두고 1차 지지선을 구축했다는 분석이다.
원·달러 환율 1200원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한국은행이 본격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2일 장중 '환율이 과도하게 오르고 있다'고 구두 개입했고 장 마감 직전 달러를 매도해 환율 상승을 저지했다.
◆ 당분간 1190원선에서 공방 지속
금융투자업계는 원·달러 환율이 내달 말 열리는 G20 정상회담 이전까지 무역협상 관련 뉴스 흐름에 따라 1190원대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 의지와 과거 사례, 위안화 환율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1200원을 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1200원선을 넘기는 순간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외환당국은 한국경제 안전성과 관련해 1200원선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며 "1200원선은 액면 그대로 심리적 저항선이라 용인해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과거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웃돌았던 때와 비교해 국내 펀더멘탈(기초체력)이 탄탄하다는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원·달러 환율은 2016년 2월 1240원 수준까지 급등했다. 중국발 경기 둔화 우려와 함께 대북 리스크까지 더해져 원화 약세(원·달러 환율 상승) 현상이 두드러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시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원화 약세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지금과 비슷하다"면서도 "다만 지금은 외환보유고와 해외 자산 등이 양호한 수준이어서 그때만큼의 급등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한국의 총 외환보유액은 4040억달러다. 2016년 1월 말 3673억달러와 비교해 300억달러 가량 더 많다.
통상적으로 원화와 궤를 같이하는 위안화 환율 상승 추세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최근 "위안화 환율 7위안 수준을 넘어서면 중국에 손해가 크고 이익은 작다"고 언급하며 시장에 개입했다. 외환시장에 풀린 위안화를 흡수하기 위해 홍콩에서 중앙은행 증권을 발행하고 앞으로도 추가 발행할 계획이 있다고도 밝혔다.
지난해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인상했을 때는 중국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위안화 환율 상승을 묵인했다. 관세율이 25%로 높아진 상황이어서 지금은 추가 위안화 절하로는 맞서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미 중앙은행이 대응조치를 취하면 게임 끝"이라고 언급한 만큼,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설 경우 미국이 반격할 가능성도 있다.
권희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얻을 것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물가 상승과 자본 도피를 더욱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인민은행은 7위안 수준의 방어선을 당분간 지키려고 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원화 환율도 1200원 선을 전후로 추가 상승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 달러 약세로 3분기부터 하락 전환
원·달러 환율이 최근 급등세를 되돌리는시점은 3분기 중반부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중 무역협상 봉합 분위기가 전제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의 지금 상황은 오버슈팅(일시적 과열)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며 "미국과 중국이 봉합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분위기와 인식 자체가 완화적으로 바뀐다면 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 경기 개선 등 국내 요인보다는 대외적 요인이 원·달러 환율 하락을 이끌 것을 보인다. 특히 하반기로 갈수록 달러 강세가 제한되면서 상대적으로 원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것은 상대적으로 유럽 대비 미국의 경기 모멘텀(동력)이 양호했기 때문이다. 3분기부터는 미국 외 지역의 경기 반등이 가시화되면서 달려 강세 압력이 완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상재 팀장은 "유로존 경기 회복으로 인한 유로화 반등이 강달러 압력을 완화시키면서, 달러화에 민감한 원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둔화된 상황에서 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가 완화적이라는 것 역시 달러 강세를 제한할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3분기 중 급등세를 되돌리며 연말에는 1100원대 중반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정성태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협상이 봉합된다는 가정 아래 연말 원·달러 환율은 1150원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며 "잘 안된다면 원·달러 환율은 연말까지도 지금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했다.
박상현 연구원은 "내달 말 미중 정상이 만나지도 못한다는 확신이 선다면 원·달러 환율은 1200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며 "최악의 경우에는 1250원 이상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소은 한경닷컴 기자 luckyss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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