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환율 진단]1150원 위에서 나갔던 외국인…하반기 증시 '우울'

입력 2019-05-28 08:04   수정 2019-05-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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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환율 회복 어려워, 증시 악영향 우려




우리나라가 '넛 크래커' 신세로 전락했다. 미국와 중국이 무역분쟁으로 팽팽한 힘겨루기에 나서면서 국내 증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양국의 싸움이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키면서 증시에 악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1180원대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원화 가치의 회복이 더뎌지면서 국내 증시도 당분간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졌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코스피 지수의 상승률은 0.21%(지난 24일 기준)에 그쳤 다. 종가 기준으로 2248.63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연초 수준으로 돌아왔다.

미중 무역분쟁의 당사국인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같은 기간 8.82% 상승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2.58% 급등했다. 우리나라는 분쟁 당사국보다도 저조한 증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증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미중 무역분쟁이 꼽힌다. 양국 간 수출입이 악화하면서 국내 경기도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관세로 촉발된 양국의 무역분쟁이 점차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중국 화웨이 제재, 중국의 희토류 대미 수출 중단 검토 등으로 번지고 있다.

국내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에서도 미중 무역분쟁 여파가 확인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은 25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7% 줄었다. 반도체 수출이 33%나 감소했는데 이는 대중국 수출이 15.9% 줄어든 영향이다.

최근 씨티그룹은 "1월부터 회복 조짐을 보이던 ‘아시아 반도체 선행지수'가 이달 들어 정체되고 있다"며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하면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중국 수출이 더 줄어들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미국은 화웨이와 68개의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으로 지정했다. 이에 구글 인텔 퀄컴 자이링스 브로드컴 등 정보기술(IT) 및 반도체 기업들이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은 동맹국에도 화웨이 거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도 지금보다 더 강한 수준으로 화웨이와의 거래제한을 요구하면 제2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외국인 자금 유출 본격화"

미중 무역분쟁 여파는 원·달러 환율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급격하게 오르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올 1월2일 1119.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24일 1188.4원을 기록하면서 연초보다 5.83%(69.4원)나 급등했다.

4월 이후 상승폭은 더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1140원대에서 1160원대로 훌쩍 뛰어오른 뒤 보름 만에 1190원선(지난 16일 1191.5원)에 진입했다. 심지어 지난 17일엔 장중 1195.7원까지 치솟으면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는 신흥국 10개 통화 중 터키 아르헨티나에 이어 3번째 수준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독 원화의 약세 폭이 큰 것에 대해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피해를 국내 수출이 가장 크게 받고 있다"며 "미중 무역갈등 영향이 글로벌 교역에 본격적으로 반영된 1분기 주요국 수출 증감률을 보면 한국의 수출 감소폭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수출부진이 전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시에 무역수지 흐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작년과 달리 반도체 무역수지 흑자가 급감하면서 전체 무역수지 흑자폭이 크게 감소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짚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도 본격화됐다.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1179.8원에서 1194.0원으로 올랐다. 이 기간 외국인은 8거래일 내내 매도세를 이어갔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조7180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환율이 급격하게 요동치자 우리나라와 중국의 통화당국은 외환 시장 개입에 나섰다.

지난 2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실수요나 실수급 외 요인으로 과도한 환율 쏠림이 생겨 시장 불안이 발생하면 안정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앞서 20일 판궁성 인민은행 부행장 겸 외환관리국장은 "우리는 위안화 환율을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환율 추가 상승에 제동을 걸었다.

공유찬 삼성선물 수석연구원은 "최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면서 정부에선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로 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며 "1200원이 넘어가면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원화 강세 요인 없어…국내 증시 악영향"

문제는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달 초 있었던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은 주요 쟁점인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외국기업 기술이전 요구 방지, 자국기업에 대한 보조금 정책 등에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확인했다.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끌어내지 못한 이후 미국은 중국산 제품 2000억 달러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했다. 여기에 미국 회사들의 외국 통신업체 기술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중국도 보복성으로 미국산 수입품 600억 달러 규모에 대한 관세를 같은 수준인 25%로 인상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산 곡물과 돈육 수입 계획도 철회했다.

김두언 KB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무역분쟁이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며 "내달 말에 있을 G20회의에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관세 인하나 철폐 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국내 증시에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국내 증시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외국인투자자는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원·달러 환율 평균은 1130원이다. 그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7조3000억원을 순매수했는데 원·달러 환율을 구간별로 나눴을 때 외국인이 1150원 아래서는 순매수를, 위에서는 순매도하는 경향이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1150원을 위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반기에도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로 전환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달러 강세,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환율도 국내 증시 상승엔 동력이 되지 못하면서 국내 증시에 우호적인 환경은 조성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가 당분간 양호한 수준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고, 이에 미국 중앙은행(Fed)는 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원화 강세가 나타나기 어렵다"며 하반기 원·달러 환율 예상 범위를 1160~1180원으로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신흥국지수(MSCI EM) 비중 조절 등 외국인 수급에 부담을 주는 이슈도 앞두고 있다.

안영진 연구원은 "원화가 강세를 보인다면 현재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며 "MSCI EM 비중 조절을 비롯해 연말까지 지수 조정 이벤트가 있는 만큼 외국인 수급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증시 전망이 부정적일 것임을 시사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하반기 코스피 지수는 하락 추세를 보일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 간의 강경한 대립구도 등이 조성되고 있는데 무역분쟁이 격화돼 글로벌 경기·교역·실적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유럽과 중국의 경기 불안, 코스피 실적 레벨 다운 등도 예상돼 글로벌 기초체력(펀더멘털)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이송렬/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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