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황창화 사장의 한숨…답없는 '쓰레기 발전소'

입력 2019-05-28 10:35   수정 2019-05-28 10:39


며칠 전 만났던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전남 나주의 ‘SRF(Solid Refuse Fuel) 발전소’를 놓고서였지요. 이 발전소를 준공한 것은 2017년 하반기. 건설비로만 2800억원을 들여놓고서 지금까지 1년 반 넘게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작년 226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로 전환했는데, 이 발전소를 재무상 ‘손상차손’으로 손실 처리했던 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 지어놓은 이 발전소를 돌리지 못하는 건 나주혁신도시 내 일부 주민들의 반대 때문입니다. “일반 쓰레기 소각장과 같이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배출될 수 있다”는 거지요. 또 다른 동네(광주 및 전남지역) 쓰레기까지 가져와 태울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구요. 주민들은 “쓰레기 발전소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바꾸라”거나 “발전소를 아예 철거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역난방공사와 범시민대책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나주시 관계자들이 수 차례 협의에 나섰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SRF 발전소는 기본적으로 쓰레기를 태우는 시설이 맞습니다. 다만 단순한 소각장이 아닙니다. 폐비닐과 생활 쓰레기를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기 때문에 ‘쓰레기 소각’과 ‘전력 생산’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표적인 신재생 발전소입니다. 황 사장은 “미세먼지 등 유해물질 배출 정도는 LNG와 거의 차이나지 않을 정도로 친환경성이 강화됐다. 발암물질 배출 등은 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작년 10월 취임한 황 사장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이긴 하지만 과거 열공급 계통에서 근무했고 관련 자격증도 있어 단순한 ‘낙하산’은 아닙니다.

이런 SRF 발전소는 나주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20곳이 넘습니다. 수 년 전 가동하기 시작한 일부를 제외하고선 모두 파행을 겪고 있지요. 문재인 정부 들어 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집단 반발이 커지면서 관련 규제가 대폭 강화됐던 게 기폭제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환경부는 2017년 9월 SRF 발전소 운영을 종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꿨고, 대도시 내 사용도 금지했습니다. 이 새로운 규제가 지역 주민들에게 ‘SRF 발전소는 유해 시설’이란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SRF 발전소 건립 논의를 시작한 건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효율적인 대안으로 주목 받았지요. 유럽 일본 등에서도 쓰레기 소각시설의 다이옥신이 사회 문제로 비화하며 SRF 발전소를 많이 건립했습니다.

쓰레기는 소각하지 않으면 쌓입니다. 더구나 우리처럼 좁은 영토엔 더 이상 매립할 곳도 없지요. 해외로 보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필리핀에 밀수출했던 쓰레기를 우리 비용으로 되가져온 게 단적인 예입니다. 갈 곳 없는 불법 폐기물만 전국적으로 200만t 넘게 방치돼 있을 것이란 게 관련업계의 추정입니다.

대안은 SRF의 환경 설비를 더욱 강화하고 주변 지역 주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는 겁니다. 황 사장은 “SRF 발전소의 내부 시설에 추가 덮개를 씌워 냄새를 원천 차단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며 “주민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전기와 열 요금을 대폭 깎아주고 발전소 주변을 환경 친화적으로 만들어 주민 편의시설로 개방하는 해외 사례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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